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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기 위해, 고통을 사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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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아픔의 책임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져온 연구자가 다시 그들의 '고통'을 적어내려 갔다. 세상에서 제거된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답을 찾아온 공부의 흔적이자,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고백하는 분투의 기록. '아픔이 길이 되려면'으로 주목받은 저자 김승섭(44)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교 교수의 신간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얘기다.
6년 전 책에서 차별과 혐오, 고용불안, 실직, 참사가 한 인간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사회적 맥락에서 풀어냈다면 신작에선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노동자 등 오래전부터 한국사회에서 지워진 존재들의 몸에 갇힌 상처를 구체적으로 짚어냈다. 뉴스와 소셜미디어가 합세해 지금 전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중계하는 시대에도 쉽게 포착되지 않았던 그 고통은, 저자가 "읽고 만나고 부대끼며" 찾아낸 데이터와 문장을 통해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리 마음속에 분노와 슬픔이 있어도, 학자로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나은 무기를 세상에 내놓고 싶다"던 저자의 말대로 책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소수자에게 낙인을 부여했던 19세기 논문부터 국내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한 최신 연구까지, 소수자의 고통을 둘러싼 학술적 논의와 데이터가 풍부하게 담겼다. 데이비드 윌리엄스, 캐런 메싱 등 세계 석학들과 만나 나눈 대화들은 우리 안의 부조리함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돌아보게 한다.
고통에 응답하기 위해 저자가 찾아낸 고통의 심층은 너무나 복잡다단해서 암담할 정도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화장실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한국 여성에게 공중화장실은 불법 촬영과 폭력을 걱정해야 하는 불안한 공간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HIV 신규 감염을 줄일 보건정책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그 질병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감염인의 사회적 존엄을 지킬 길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저자는 고통의 복잡한 맥락을 헤아리면서도 그것이 뿌리를 박고 있는 어떤 현실도 당연히 여기지 않고 더 나은 질문을 찾아간다. 틈을 파고드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상식에 가려져 있던 세상의 불합리성과 불평등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그것이 저자가 의학을 전공한 후 질병을 치료하는 보통 의사가 아닌 질병의 사회적 맥락을 연구하는 보건학자의 길을 걷는 이유이기도 할 터. 보다 가까이에서 타인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시선엔 수많은 모순과 회의, 그리고 희망이 담겨있는 듯하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더 좋은 지식, 새로운 응답에 우리 모두가 또 한 번 빚을 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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