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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은 한국, 성적은 일본… "우리 선수층 얇아 스타급에 돈다발"

입력
2023.11.25 04:30
수정
2023.11.25 16:2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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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한일 남녀 농구·배구 선수 연봉 분석
日 여자 농구 4000~6000만원 추정
한국 여자 농구는 평균 1억... 거품?
배구도 한국이 일본보다 2~3배 많아
'韓은 프로, 日은 실업' 리그 구조 달라
"日 연봉 적지만 은퇴 후 생활 안정적"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지난달 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준결승 한국과 일본의 경기. 김단비가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항저우=연합뉴스

지난달 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준결승 한국과 일본의 경기. 김단비가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항저우=연합뉴스


(국내 프로 리그에서) 연봉을 많이 받고, 에이스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국제 대회 오면 (실력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늘 배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성장해 후배들은 일본을 이겼으면 좋겠어요.

여자 농구 대표팀의 주장 김단비(33·우리은행)는 지난달 3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23점차 대패(58대 81) 직후 취재진에 이렇게 말했다. 국내 프로 리그 선수들로 꾸려진 구기 종목 대표팀이 저조한 성적을 낼 때마다 터져 나오는 '연봉 거품론'을 대표팀 맏언니가 꺼낸 것이다.

우리 리그 선수들은 진짜 실력에 비해 연봉을 많이 받을까. 또 고연봉 구조가 우리 스포츠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일까. 한국일보는 대표적인 실내 구기 종목인 농구와 배구의 연봉을 라이벌인 일본과 비교해 연봉 거품론의 실체를 따져봤다.

일본에 참패한 한국 농구, 리그 연봉은 일본에 2배 이상 ↑

최근 대회에서 가장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든 종목은 남녀 배구다. 남자 배구(세계랭킹 28위)는 지난달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몇 수 아래로 봤던 인도(73위)와 파키스탄(51위)에 덜미를 잡혀 7위에 그쳤다. 여자 배구(40위)도 메달을 따지 못했다. 불과 2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배구 여제' 김연경 등을 앞세워 4강에 들었지만, 핵심 선수들이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자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반면 일본 남자 대표팀은 해외 진출 선수 등을 빼고 2진급으로 꾸려졌는데도 동메달을 땄고, 여자 대표팀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일 농구·배구 리그 평균 연봉 비교. 그래픽=송정근 기자

한일 농구·배구 리그 평균 연봉 비교. 그래픽=송정근 기자

한국보다 강한 일본 선수들은 자국 리그에서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한국 V리그(프로 리그) 남자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2억3,011만 원(한국배구연맹 자료·옵션 포함)인 반면, 일본 최상위 리그인 V리그 남자 선수들의 경우 700만~900만 엔(6,100만~7,800만 원)으로 추정된다. 일본 V리그는 우리와 달리 정확한 선수 연봉을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배구단을 운영하는 일본 기업의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연봉을 추정해볼 수 있다.

리그 대표 선수 연봉만 놓고 보면 격차가 더 크다. 한국 리그 '연봉킹'인 국가대표 세터 한선수(38∙대한항공)는 올해 10억8,000만 원(옵션 포함)을 받는다. 2위인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석(28∙대한항공)의 연봉은 9억2,000만 원이다. 반면 오카와 마사아키 일본 V리그 부회장은 지난 2월 기자 간담회에서 “(1억엔(8억7,000만원) 연봉자가 있는 일본 프로 농구와 달리 배구에는) 1억 엔 연봉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리그 최고 수준 대우를 받는 대표팀의 미들 블로커 오노데라 다이시(27∙JT선더스)의 연봉은 2,000만 엔(약 1억7,000만 원) 수준으로 추정돼 1억엔과는 차이가 크다.

우리 농구선수들도 국제 무대에서 드러난 실력에 비해 적지 않은 돈을 받는다. 특히 한국 여자프로농구(WKBL) 등록 선수 92명(올시즌 기준)의 평균 연봉(수당 포함)은 약 1억151만 원이다. 반면 일본 여자 실업 리그(W리그) 선수들은 평균 500만~700만 엔(4,300만~6,000만 원)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9월 30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조별리그 D조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허훈(오른쪽 세 번째)을 비롯한 선수들이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한국은 83대 77로 일본에 패했다. 항저우=뉴스1

9월 30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조별리그 D조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허훈(오른쪽 세 번째)을 비롯한 선수들이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한국은 83대 77로 일본에 패했다. 항저우=뉴스1

우리 남자 농구 스타 선수들은 한 수 위인 일본 선수와 연봉 격차가 그렇게 크지 않다. 남자프로농구(KBL)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는 국가대표 가드 김선형(35·SK)의 올시즌 연봉은 8억 원(인센티브 포함), 2위인 포워드 문성곤(30·KT)은 7억8,000만 원이다. 일본 최상위 B리그 최상위급 연봉자인 도가시 유키(30·치바 제츠)가 받는 돈(1억 엔·8억7,000만 원·인센티브 미포함)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리그 내 '빈익빈 부익부'도 심각

한국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리그 구조가 달라서다. 우리는 남녀 농구∙배구 모두 프로 리그가 운영된다. 반면 일본은 남자 농구만 프로이고, 나머지 종목은 세미 프로 또는 실업 리그다. 프로 계약을 맺는 선수도 있지만 대부분 ‘직장인’ 신분으로 급여를 받으며 생활한다는 얘기다. 팀 성적이나 개인 기록이 좋으면 성과금을 더 받아가는 구조다. 일부 선수는 운동만 하는 조건으로 계약하지만, 비시즌에는 직장 업무와 운동을 병행하는 이들도 많다.

일본에선 현역 시절에는 운동에만 전념하고, 은퇴 이후엔 회사를 계속 다니며 사무∙영업 등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다. 당장 통장에 찍히는 돈은 한국 선수들보다 적지만 선수 생활을 마친 뒤 훨씬 안정적인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농구계의 한 관계자는 “리그 시스템이 달라서 한일 리그 선수의 연봉을 단순 비교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 소속이던 김연경이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지뉴 경기장에서 열린 리우 올림픽 여자 배구 8강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 소속이던 김연경이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지뉴 경기장에서 열린 리우 올림픽 여자 배구 8강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팀 운영 목적과 방식이 다른 것도 연봉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다. 우리 프로 스포츠는 재정적으로 모기업에 의존하기에 구단이 스스로 돈을 벌지 않아도 살아남는다. 대기업은 대부분 홍보 목적으로 팀을 운영한다. 반면 일본은 각 팀이 리그에서 어느 정도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각 팀이 벌어들인 수익 범위 내에서 전체 연봉이 책정되기 때문이다.

두텁지 못한 선수층도 각 구단이 스타급 선수들에게 거액의 돈을 주는 원인이다. 여자 농구계의 한 관계자는 "최고 센터인 박지수(25·KB국민은행)와 경쟁할 만한 선수가 리그에 몇 명 더 있다면 영입 경쟁이 덜해 연봉이 조금 내려올 것"이라면서 "경쟁력을 갖춘 선수가 많지 않아 특출 난 재능의 선수가 많은 돈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고연봉 구조보다 리그 내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한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한국 남자 V리그 신인 선수 연봉은 2,400만 원(수련 선수)~4,000만 원(1~3라운드 지명 선수)이다. 최고 연봉자(한선수)와 많게는 45배 차이가 난다. 각 프로 구단은 최저 연봉을 인상하면 인건비 총액이 올라가 구단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대부분 반대한다.

일본 남자 농구 대표팀 주전 포워드인 와타나베 유타가 미국 NBA 브루클린 네츠에서 뛰던 모습. 현재는 피닉스 선스 소속이다. AP 연합뉴스

일본 남자 농구 대표팀 주전 포워드인 와타나베 유타가 미국 NBA 브루클린 네츠에서 뛰던 모습. 현재는 피닉스 선스 소속이다. AP 연합뉴스


"전체 연봉 하향화보다는 리그 경쟁력 강화 논의해야"

A급 선수에게 고연봉을 안기는 구조가 특급 유망주의 해외 진출을 막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손대범 KBS N 농구 해설위원은 "일부 선수 부모는 국내에 남아 1억~2억 원씩 안정적으로 받는 게 낫다는 이유로 해외 진출을 반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 욕구가 떨어지면 국제대회에서 실력을 뽐내 다른 나라 구단 관계자의 눈에 띄어야 할 이유도 사라진다.

지난 9~10월 열린 파리 올림픽 예선에 출전한 일본 남자 배구 선수 14명 가운데 이탈리아 등 해외파는 4명이었다. 반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우리 남자 배구 정예 멤버 12명 중 해외파는 1명도 없었다.

농구와 배구 프로 리그를 운영하는 연맹 내부에선 '연봉 거품론'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진경 WKBL 경기운영본부장은 "단순히 '국제 대회 성적이 안 좋으니 선수 연봉을 깎자'고 논의해선 안 된다. 잘하는 선수가 높은 연봉을 받아야 후배들도 동기부여가 된다"며 "현재의 연봉 시스템에서 어떻게 하면 경쟁을 강화해 선수와 리그의 전체적인 실력을 끌어올릴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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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근 기자
이오늘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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