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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 과반수가 농촌 유학생… 폐교 위기 막고 농촌에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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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토요일 상영합니다.
도시 학생의 농촌 유학을 통해 폐교 위기를 극복하고 활력을 되찾은 시골 마을이 있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 관창2리 ‘양삼마을’이다. 전체 주민의 절반이 농촌 유학생으로, 동네 어르신과 초ᆞ중학 유학생들이 함께 밭을 일구고 채소를 가꾸며 왁자지껄한 마을엔 늘 생기가 돈다. 폐교 위기에 처해 있던 면 내 유일한 초등학교는 두 학급을 증설하기도 했다. 한 전직 은행원 부부의 결단과 주민의 호응, 정부ᆞ지자체의 지원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값진 결과물이다.
경북 봉화군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소멸위험 지역이다. 1960년대 12만 명에 달하던 인구는 지난 7월, 3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10월 말 현재 인구는 2만9,753명. 대도시 1개 동에도 못 미친다.
단풍으로 유명한 청량산 초입에 있는 양삼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이 마을은 관창2리 5개 자연부락 중 하나로 청량산도립공원 구역 안, 외청량산 기슭 구릉지에 터를 잡고 있다. 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뒤에는 청량산 축융봉이 서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 본류와 춘양면에서 흘러내려온 운곡천이 만나 마을 앞을 거쳐 안동댐으로 이어진다. 2개의 물줄기가 합쳐졌다고 해서 ‘이나리강’이라고도 부른다. 여름철에는 급류가 그만이다. 전국 각지에서 래프팅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도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30여 가구 150명이 넘던 주민은 한때 10여 가구까지 쪼그라들었다.
2014년 청량산풍경원 농촌유학센터가 들어서며 마을이 달라졌다. 농촌 유학은 도시에 사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부모 등 가족의 곁을 떠나 지역학교에 다니며 센터에서 반년 이상 시골살이를 경험하는 활동을 뜻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0년부터 지자체와 함께 농촌유학시설에 생활교사 인건비, 방과 후 프로그램 등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농식품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전국 농촌유학센터는 청량산풍경원을 포함해 28곳이다. 청량산풍경원의 경우 학생들은 월 50만~80만 원을 내고 대부분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곳에서 생활한다.
청량산풍경원은 대구의 은행 부부 행원이던 김석구(49)ᆞ한현숙(55)씨가 고향 땅에 설립했다. 1만㎡ 부지에 도서실과 모임방, 활동방, 상담실 등이 있는 교육관과 남녀 학생 숙소인 생활관, 탁구 등 실내운동시설을 비롯해 원예체험장의 다목적공간, 야외교육장, 옥상쉼터, 소규모 운동장, 원두막, 염소 닭 등 가축사육장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6,600㎡의 농장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살아있는 교육장이다. 무 배추 파 마늘 상추 시금치 등 갖은 채소류를 키운다. 한쪽에는 참나무 통나무를 쌓아 놓고 표고버섯도 재배한다. 재배한 버섯과 채소 등은 식탁에 올리고, 이웃 주민과 나눠 먹기도 한다.
농사의 ‘농’ 자도 모르는 유학생들을 위해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멘토로 나섰다. 함께 씨를 뿌리고 풀을 뽑으며 자연의 이치를 깨우친다. 한 주민은 “유학센터 덕분에 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니 이제야 사람 사는 동네 같아졌다”고 미소 지었다. 학생들은 처음엔 교육관에 딸린 숙소에서 지냈다. 잠자리가 부족해 초기에는 마을회관 신세도 졌다. 그러다 지난해 5억 원가량 들여 별도의 2층짜리 생활관을 지으면서 불편은 말끔히 해소됐다. 특히 생활관 창문 밖 풍경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절경이다.
유학생들은 과외를 모른다. 초등생은 학교 스쿨버스로 편도 10㎞ 거리를 매일 통학한다. 중학생은 대부분 월~목요일은 학교 기숙사에서, 나머지 3일은 센터에서 생활한다. 공부방에서 책을 보다가 지루하면 탁구를 치고 놀이도 한다. 여름엔 마을 앞 이나리강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주말에는 틈날 때마다 인근에서 열리는 축제장이나 공연 전시회를 찾는다. 지난 4일엔 안동시 한국문화테마파크에서 열린 창작뮤지컬 ‘안동역에서’를 관람하고 출연진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앞서 9월 말에는 봉화송이마라톤대회에도 출전했다.
센터가 생기면서 89년 역사를 자랑하는 관내 유일한 초등학교인 명호초는 2016년 5학급에서 7학급(특수학급 포함)으로 2학급 증설했다. 담임교사 등도 추가 배치했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신입생이 없어 다시 1학급을 줄였지만 전교생 46명 중 10명이 여전히 농촌 유학생이다.
유학생들은 서울 대구 부산 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온다. 한두 학기 정도 농촌체험을 하고 원래 살던 곳으로 전학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숙형 공립중학교인 청량중으로 진학하는 이들도 적잖다. 청량중에도 전교생 78명 중 농촌 유학생이 12명이나 된다. 청량중을 졸업한 이들 중 일부는 또 봉화 관내 고교로 가기도 한다. 명호초 관계자는 “도시에서 살다가 낯선 농촌으로 왔기에 기존 아이들과 잘 어울릴까 걱정도 했는데 기우였다”며 “여느 아이들처럼 열심히 수업하고 뛰어놀고 마냥 행복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도ᆞ농 교류 가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여름방학 때도 인천 체드윅국제학교 학생 30명이 10명씩 나눠 센터 운동장에서 유학생과 1박 2일간 캠핑을 하며 우정을 다졌다.
올해 자녀를 강원도에서 이곳으로 유학 보낸 한 학부모는 “아이가 초등 저학년 때부터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에는 아예 학교를 가지 않으려 해 싸우기 일쑤였다”며 “고민 끝에 농촌유학을 보냈는데 180도 달라졌다. 학급 반장도 맡았다. 학교생활이 행복 그 자체라고 한다”고 흡족해했다. 한 유학생은 “이렇게 행복한 경험을 나 혼자만 즐길 수 없어 감사의 뜻으로 나중에 크면 엄마ᆞ아빠를 이곳으로 유학 보내줄 것”이라고도 했다.
현재 양삼마을 전체 주민은 54명이다. 이 가운데 청량산풍경원 센터에 적을 둔 유학생(22명)과 생활교사, 활동가 등이 30명이나 된다. 마을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다. 봉화군 관계자는 “도시 사람들에겐 별것 아닐지 몰라도 폐교 위기에 있던 명호초 학급과 교직원이 늘어나는 등 봉화에선 대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농촌 유학생의 효과가 입증되자 경북도와 봉화군, 경북도교육청도 팔을 걷어붙였다.
경북도와 봉화군은 ‘소규모마을 활성화’ 사업 일환으로 도ᆞ군비 4억 원을 들여 연말까지 양삼마을에 유학생과 부모가 함께 지낼 수 있는 ‘엄마품 하룻밤센터’를 조성 중이다. 센터 앞 공터에 카라반 형태의 숙소 4동과 주차장, 바비큐장도 설치했다. 학부모들이 이용하지 않을 때에는 학생 쉼터, 유학센터 행사, 마을행사 등 다목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완공되면 유학생 부모를 초청, 관내 문화유적탐방과 은어축제체험 등을 통한 봉화 알리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북도교육청은 9월부터 매주 월ᆞ목요일 주 2회 원어민 화상영어수업 프로그램을 서비스하고 있다. 지난 1일엔 경북도교육연구원 연구관과 원어민교사들이 센터를 방문, 현장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봉화군은 또 농촌유학에 앞서 며칠간 실제로 현지에서 생활하며 유학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농촌유학체험캠프 비용을 지원한다. 센터 생활교사 등에 대한 인건비와 유학생들의 방과후프로그램 활동비 등에 쓰일 예정이다. 아울러 내년 초까지 ‘봉화군 농촌유학 지원 조례’를 제정한 뒤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유학 지원금 9,000만 원도 확보할 방침이다. 영리법인에 대한 지원이지만, 지역소멸 위기 극복 효과가 훨씬 크다는 판단에서다.
구광모 경북도 인구정책과장은 “양삼마을은 농촌유학센터를 매개로 도시 학생이 전입하고, 학생 가족의 왕래 등으로 마을이 활력을 되찾은 대표적인 마을”이라며 “삶의 질 개선을 통한 지속가능한 마을을 실현하기 위해 마을 주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삶터 일터 쉼터 기능을 활성화하는 소규모 마을 활성화 사업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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