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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를 거슬러 뛰어오르는 사슴을 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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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슴은 내려오던 에스컬레이터에 난생 처음 뛰어올라 /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 저 높은 곳을 향해 / 한발 한발 뛰어 / 올라갔을 텐데 / 당장은 어디로도 뛰어 올라갈 일 없는 나는 / 노트북을 덮고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 사슴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뛰어 올라갔을 / 그 에스컬레이터를 생각한다…(중략) 어쩌면 천국은 결국 / 고작 이층에 있는 것이지만 / 때로는 이층까지 가기도 / 그토록 힘들다는 것을 생각한다 / 천국이 알아서 내려와주면 좋으련만 / 천국은 저 위에 있어서 우리는 자꾸 / 올라가다 미끄러지기만 한다는 것을 / 결국 제압되어 안락사에 이른 후에도 / 천국은 내려올 생각이 없다는 것을"
시를 읽는 건 때론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시어 하나하나가 이미지로 그려지고 한 행 한 행 넘어가면서 캔버스가 조금씩 채워지는 기분이랄까요. 황유원 시인의 신작 시집 '하얀 사슴 연못'은 유독 더 선명하게 이미지를 그리게 합니다. '시인의 말'에서 시인도 "이 시집이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회 공간처럼 읽혔으면"하는 바람을 드러냈습니다. 사슴들이 뛰어다니는 시집 안에서 특히 오래 시선이 멈춘 작품은 '에스컬레이터'라는 시였습니다.
화자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병원으로 뛰어 들어간 사슴이, 하행하는 에스컬레이터를 거슬러 뛰어오르는 장면을 뉴스로 보게 되지요. 그러다 사슴에 우리를 투영해 봅니다. 고작 이층에 있는 '천국', 다시 말해 이상을 향해 몇 번이고 뛰어오르지만 가닿지 못하는 모습이 참 익숙합니다. 그런 사슴, 그리고 사슴을 생각하는 화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고되고 헛되고 그래서 외로운 그 시간. 그런데 그 몸짓을 연민이나 안타까움만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너무 숭고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 그림 앞에 선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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