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의 길

입력
2023.11.2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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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합동참모본부 의장 후보자가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김명수 합동참모본부 의장 후보자가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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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해군작전사령관 깜짝 발탁… 10년 만에 해군 출신 합동참모의장”

지난달 29일 국방부가 대장급 인사를 단행했을 때 대다수 매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같은 제목을 앞세운 기사를 썼다. 현역 대장 7자리가 모두 물갈이되면서 합참의장 자리에 현역 해군 중장이 지명되면서다.

우선 기대가 컸다. 김명수 합참의장 후보자는 해군사관학교(43기) 수석 졸업 출신인 데다가 2012년에는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체를 최초로 탐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해군 관계자들은 김 후보자가 ‘작전의 명수’로 불린다며 최윤희 의장 이후 10년 만에 해군 출신이 합참의장이 된다고 기대의 시선을 보냈다.

국방부 역시 김 후보자가 “탁월한 위기관리 및 합동작전 능력을 구비해 육해공군의 합동성을 강화하고, 전·평시 완벽한 전투준비 태세를 구축할 합참의장으로 최적임자”라며 군불을 지폈다. 대통령실도 “때마침 좋은 후보가 있어 윤석열 대통령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건의를 수용했다”고 했다.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5일 국회에서 열린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문이었다. 김 후보자는 근무 시간에 주식 투자를 하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날 골프장을 찾았으며 자녀의 학교폭력 의혹까지 나왔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먼저 자기 자신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한 다음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는 구절에 비춰봤을 때 ‘수신’도, ‘제가’도 하지 못한 셈이다.

야당은 김 후보자를 비토하는 모양새다. 청문회 마지막에는 집단 퇴장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튿날에는 윤 대통령에게 “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라”고 했고 청문보고서 채택은 기약이 없다. 윤 대통령이 청문보고서 국회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할 수는 있지만 정치적으론 이롭지 않은 선택이다. 현 김승겸 합참의장이 2006년 합참의장 국회 인사청문회 실시 이후 처음으로 청문회를 ‘패싱’했기 때문에 이번까지 강행돌파를 선택한다면 군을 작전지휘하고 군사력을 작전운용하는 ‘군령권’에 대해 견제 의사를 밝힌 입법부를 연거푸 무시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군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는 말이 있지만 혹여 합참의장에 임명되더라도 김 후보자가 군령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군은 김 후보자가 청문회 당시 “의장이 되면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문제가 됐던 주식은 전량 처분했다고 전했다. 자녀의 학폭 문제에 대해서도 주동자라기보다는 주변인이었을 뿐이라는 게 군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미 흠결이 드러난 ‘제복군인 최선임자’의 지시와 명령에 힘이 실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대의 귀신 같은 전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였고(神策究天文)/신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통달했구나(妙算窮地理)/전쟁에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戰勝功旣高)/만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는 것이 어떠하리오(知足願云止)”

고구려 영양왕 때 장수 을지문덕 장군은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이렇게 시를 보내 철군을 종용했다. 군인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대장까지 오른 ‘작전의 명수’ 김 후보자가 곱씹어봐야 할 듯하다. 무인은 명예를 먹고산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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