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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값 15조의 희한한 흑자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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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장보기가 겁난다’는 말이 요즘처럼 와닿는 때가 없었다. 빵, 우유, 라면, 두부, 소주 뭐 하나 안 오르는 게 없다. 오죽하면 정부가 부작용을 뻔히 알면서도 품목별 물가를 잡겠다며 ‘빵 과장’ ‘우유 사무관’을 만들었겠나. 식품업체들은 원료 가격이 올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밀가루값이 올랐으니 빵 가격을, 원유 가격이 올랐으니 우윳값을 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얘기다. 엄살도 섞여는 있지만, 틀린 얘기는 분명 아니다.
□원가가 올랐는데 판매가를 올리지 못해서 손해가 발생하면 기업들은 손실 처리해야 한다. 원가보다 싸게 팔면 손실인 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걸 미수금, 그러니까 언젠가는 돌려받을 외상값으로 처리하는 기업이 있다.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다. 외국에서 120원을 주고 가스를 샀는데 국내에서 100원에 팔면 차액인 20원을 외상값으로 본다는 얘기다. 그러니 회계장부에는 버젓이 자산으로 분류해 놓는다.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최근 몇 년 새 큰 폭으로 늘었다. 2000년 말 1,941억 원에 불과했던 미수금은 2021년 말에는 1조8,000억 원으로, 그리고 작년 말에는 8조6,000억 원으로 불었다. 지난 13일 공개한 3분기 실적을 보면 15조5,432억 원이다. 올해 들어서만 7조 원 가까이 늘었다는 얘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했는데 정부 압박으로 도시가스요금을 제대로 올리지 못해서다. 지난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단가는 2배가량 뛰었는데, 도시가스요금 상승폭은 30%에 그쳤다.
□황당한 건 손실을 외상값으로 둔갑시켜 사실상의 자본 잠식이지만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 연간 2조4,000억 원의 막대한 이익을 냈고, 올해도 3분기 연속 흑자다. 올 초엔 흑자를 냈으니 배당을 하겠다고 하다가 여론에 두들겨 맞고 후퇴하기까지 했다. 이런 회계방식을 채택한 건 원료비 연동제 때문이다. 원료비가 오르면 가스비를 올리도록 해놨으니까 언젠가는 가스비를 올려 회수를 할 수 있다는 게 가스공사 대주주인 정부 주장이다. 정부가 사실상의 분식회계를 언제까지 조장할 요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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