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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일상과 발야구

입력
2023.11.18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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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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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한때 고스톱 공화국이었다. 세 명 이상만 모이면 고스톱을 쳤다. 장소는 중요치 않았다. 상갓집은 물론이고 음식점에서도 고스톱은 이어졌다. 시·공간에 약간의 여유만 있으면 항상 화투가 등장했다. 그런데, 화투판에는 늘 갈등이 생겼다. 동네마다 다른 규칙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전 합의가 필수 요소였다.

스포츠에서는 발야구(kick baseball)가 이와 비슷하다. 남녀가 함께 즐길 수 있고 방법도 간단해 가을 체육대회의 단골 종목으로 꼽힌다. 홈에서 출발해 세 개의 베이스를 거쳐 다시 홈에 돌아오면 득점이다. 다만, 인원 수, 베이스 간 거리, 파울 라인 등은 매번 정하기 나름이라 때마다 규칙에 대해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발야구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발야구를 우리나라에서 만든 경기로 생각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발야구는 1917년 미국 오하이오(Ohio)주 신시내티(Cincinnati)의 공원 관리자인 니콜라스 수스(Nicholas Seuss)가 창안했다. 그는 야구를 좋아하는 공원 관리인이었다. 공원에 오는 어린 학생들에게 야구 규칙을 쉽게 가르치고 싶었다. 어린이들은 빠르게 날아오는 야구공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작고 단단한 야구공 대신 축구·배구공을 활용해 장비가 없어도 발야구를 즐길 수 있게 했다.

공을 던지는 투수의 역할을 없앴다. 홈 플레이트에 공을 세워놓고 발로 차면 공격 시작이다. 공을 멀리 보내기 위한 도약 거리는 3피트(약 91㎝)이다. 발로 찬 공이 5피트(약 152㎝)의 내야 파울 라인을 넘어야 유효 공격(in play)으로 인정한다. 이것이 발야구 규칙의 전부다. 하지만 이 간단한 규칙조차 엄격히 준수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발야구에서 규칙은 중요하지 않다. 서로 간단히 합의 후 그냥 즐기면 된다.

보통 구기 스포츠는 공 하나의 오고 감에 예민하다. 승부를 가르기 위한 열기도 뜨겁다. 치열하게 순간을 살아내는 현대인의 삶과 닮아있다. 하지만 발야구는 그렇지 않다. 공 하나, 점수 하나에 목매지 않는다. 여유 있게 상대방을 봐주기도 한다. 발야구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가끔은 일상이 발야구처럼 조금 느슨해져도 괜찮다. 이따금 내 삶의 여유를 찾는 '발야구 구간'을 설정하는 것은 어떨까? 길게 보면 이 구간이 에너지를 모으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테니까.


조용준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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