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최대 병원 급습한 이스라엘 "하마스 색출 중"... 국제법 위반 논란 불붙나

입력
2023.11.15 19:30
수정
2023.11.15 20:2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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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하마스의 군사 거점" 발표 5시간 만에
'하마스 사령부' 지목된 알시파 병원 내부 진입
"정밀·표적화 작전 수행"... 하마스에 항복 요구
인권단체 "국제법상 '병원 지위 박탈' 증거 없다"
미 정부 직원 500명 항의서한... 바이든에 '반기'
전쟁 발발 39일 만에 가자지구로 첫 연료 반입

지난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최대 의료기관인 알시파 병원에 전쟁을 피해 몰려온 피란민들이 난민 캠프를 조성하고 북적이고 있다. 가자시티=AFP 연합뉴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최대 의료기관인 알시파 병원에 전쟁을 피해 몰려온 피란민들이 난민 캠프를 조성하고 북적이고 있다. 가자시티=AFP 연합뉴스

이스라엘방위군(IDF)이 15일 새벽(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대 의료시설인 알시파 병원 내부로 진입해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사령부가 있는 곳으로 이 병원을 지목한 이스라엘은 병원 내 하마스 대원들의 항복을 요구했다. 미국 백악관도 작전 개시 몇 시간 전 “하마스가 알시파 병원을 군사 거점으로 활용한다”고 발표하며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 줬다.

그러나 인도주의 최후 보루인 병원을 상대로 군사 행동을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 논란은 더욱 불붙을 전망이다. 알시파 병원엔 현재 환자와 의료진, 피란민 등 2,500명 안팎의 민간인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 2시 병원 급습… "병원 안뜰까지 탱크 진입"

지난 14일 공개된 영상에서 이스라엘방위군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한 건물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자지구=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4일 공개된 영상에서 이스라엘방위군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한 건물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자지구=로이터 연합뉴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영국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IDF는 15일 오전 2시 성명을 내고 “알시파 병원 특정 구역에서 하마스를 상대로 정밀화하고 표적화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새벽 병원 급습’ 작전을 공식화한 것이다. 병원 의료진은 알자지라에 “서쪽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응급실과 수술실 건물에 이스라엘군이 진입했다”고 전했다. 병원 안뜰에도 IDF 탱크가 들어섰다.

IDF는 몇 시간 후 언론 브리핑을 열고 “병원 진입 전 폭발물과 테러범(하마스)을 조우했고, 병원 밖에서 교전이 잇따랐다”고 밝혔다. 다만 병원 진입 이후엔 마찰이 없었고, “병원 측에 의료 장비와 인큐베이터, 유아식 등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IDF는 병원 지하를 수색하며 하마스의 군사 장비를 찾는 한편, 병원 본관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하마스 대원 색출’ 작업을 벌였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31일 “테러범 수백 명이 알시파 병원으로 몰려들었다는 구체적 증거를 갖고 있다”며 이곳을 하마스의 지휘소로 지목했다. 알시파 병원은 1946년 영국 식민 지배 당시 지어진 가자지구 최대 의료시설로, 1980년대 지하 확장 공사를 한 뒤 하마스가 군사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의심을 받아 왔다.

알자지라는 “IDF가 응급실과 수술실, 산부인과 병동 병실과 복도를 돌아다니며 의료진을 개별 심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IDF는 병원 내부에서 무기 등 하마스 자산을 일부 발견했고, 인질 관련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수차례 경고"... 하마스·병원 "군사 작전과 무관" 반발

가자지구 가자시티 알시파 병원 구조. 그래픽=김문중 기자

가자지구 가자시티 알시파 병원 구조. 그래픽=김문중 기자

이번 병원 급습으로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법은 ‘군사적 목표에 비해 민간인 피해가 과도하면 불법’으로 간주하는데, 이미 팔레스타인인 사망자가 너무 많은 탓이다. 특히 병원 내에서 숨진 이도 부지기수다.

이스라엘의 전력 차단으로 알시파 병원에서만 지난 11일 신생아 3명을 포함, 환자 40명이 목숨을 잃었다. 무차별 공습, 총격으로도 수십 명이 사망했다. 13일 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0.5%(1만1,240명)가 숨졌다고 밝힌 가자지구 보건부는 병원 전력 공급이 멈춘 뒤, 아예 사망자 집계를 중단했다. IDF는 논란을 의식한 듯 “최근 몇 주간 하마스가 알시파 병원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면 국제법상 보호 지위가 위험해진다고 거듭 경고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가 병원을 ‘인간 방패’로 쓴다는 게 이스라엘의 확신이다.

그러나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오마르 샤키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국장은 이날 “이스라엘 정부는 국제법에 따른 병원 지위를 박탈할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요르단 정부도 성명을 내고 알시파 병원 공격을 국제법 위반 행위로 규정했다. 하마스와 알시파 병원 측도 “군사 작전과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미국과 교감? '병원 공격 자제' 권고 무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대 의료기관인 알시파 병원이 지난 12일 정전된 뒤 병원 의료진이 전원이 끊긴 인큐베이터에서 신생아들을 꺼내 체온 유지를 위해 모아두었다. 가자지구=로이터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대 의료기관인 알시파 병원이 지난 12일 정전된 뒤 병원 의료진이 전원이 끊긴 인큐베이터에서 신생아들을 꺼내 체온 유지를 위해 모아두었다. 가자지구=로이터 연합뉴스

비판의 화살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으로도 향했다. IDF의 이날 병원 급습은 미국 백악관이 “하마스가 알시파 병원을 군사 작전 거점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발표한 지 5시간 후에 이뤄졌다. 이스라엘과 미국 간 ‘사전 교감’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실제 하마스는 “(미국이) 이스라엘군에 더 잔혹한 학살을 저지르도록 청신호를 줬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내의 반발 기류마저 확산 중이다. 14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백악관과 연방수사국(FBI)을 포함, 미 정부기관 40여 곳의 소속 직원 500명 이상이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지지 정책에 항의하는 서한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스라엘의 이번 병원 진입은 ‘단독 행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백악관은 ‘알시파 병원-하마스 연계’를 밝히면서도, “병원 공습과 교전을 지지하지 않는다”거나 “병원과 환자는 반드시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사실상 미국의 자제 권고를 무시한 것이라면, 양국 간 파열음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15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는 지난달 7일 전쟁 발발 이후 39일 만에 처음으로 연료가 반입됐다. AFP통신은 이집트 국영 알카히라뉴스를 인용해 “가자지구 남부와 이집트를 잇는 관문 중 유일하게 이스라엘이 통제하지 않는 지점인 라파 국경 검문소를 통해 연료 트럭이 통과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김현종 기자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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