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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저히 이길 수 없다"던 일본… 선택과 과학으로 '퀀텀점프'

입력
2023.11.16 13:00
수정
2023.11.25 16:5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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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4> 일본 스포츠 '퀀텀점프' 비결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서 한국에 '완패' 충격
중앙집중 과학훈련 "도쿄올림픽 메달 80% 기여"
수영 평영·스키점프 등 전략 종목 선택 집중 투자
정부 체육 정책 전문성 살리려 스포츠청 설치도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일본 수영의 전설' 기타지마 고스케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100미터 평영 결승에서 역영하는 모습.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일본 수영의 전설' 기타지마 고스케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100미터 평영 결승에서 역영하는 모습.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팀 코리아를 동경해 일본도 열심히 했다.

일본 엘리트 스포츠의 경기력 향상 책임을 맡은 가사하라 겐지 일본올림픽위원회(JOC) 강화부장은 지난 17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농담 섞인 말이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1980~1990년대 일본 스포츠계에서 한국은 ‘넘지 못할 벽’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한일 스포츠 문제를 취재해 온 오시마 히로시(62) 작가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당시 15개 구기 종목에서 한일전을 했는데 14개 종목에서 일본이 졌다"면서 "일본 스포츠계에서 '한국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나라가 돼가고 있으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일본이 2000년대 이후 절치부심한 데에는 '라이벌' 한국과의 격차를 줄이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뜻이다.

일본 엘리트 체육 강해지기까지 그래픽=박구원 기자

일본 엘리트 체육 강해지기까지 그래픽=박구원 기자


조미료 회사에도 후원 받아 엘리트 예산 확보

일본 엘리트 스포츠의 ‘퀀텀점프’(대도약)는 한국 등 스포츠 강국을 본뜬 지원 기관들을 잇따라 만들며 시작됐다. 2001년 설립한 일본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가 대표적이다. 호주의 국립스포츠연구원을 벤치마킹했지만, 1980년 만들어진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옛 스포츠과학원)의 영향도 받았다. 선수들에게 과학적 훈련법 등을 알려줘 성적을 끌어올리려는 취지였다.

일본 도쿄에 있는 아지노모토 내셔널트레이닝센터. 도쿄=유대근 기자

일본 도쿄에 있는 아지노모토 내셔널트레이닝센터. 도쿄=유대근 기자

JISS의 문을 처음 두드린 건 2000년대 ‘일본 평영의 제왕’으로 굴림한 기타지마 고스케(40∙은퇴)와 그의 코치 히라이 노리마사였다. 기타지마는 17세 때 출전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평영 400m에서 뒷심 부족으로 4위에 그쳤다. 구키도메 다케시 JISS 소장 겸 하이퍼포먼스스포츠센터(HPSC) 이사는 “JISS가 관여해 ‘팀 기타지마’라는 메달 프로젝트를 가동했다”면서 “스타트 때 물에 뛰어드는 가장 이상적인 각도 등을 분석해 기타지마에게 가장 적합한 훈련법을 알려줬으며, 식단도 짜줬다”고 말했다. 기타지마는 이후 2004∙2008년 올림픽 평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4개나 땄다.

일본 엘리트 스포츠는 2010년대 들어 한 차례 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돈과 시설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2008년 아지노모토 내셔널트레이닝센터(NTC∙국립 선수촌)가 도쿄에 문을 열었는데 이후 대표급 선수들의 실력이 메달권으로 성장했다. 2013년에는 ‘2020 도쿄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면서 엘리트 스포츠 예산이 크게 늘었다. 일본 정부가 엘리트 스포츠 경기력 강화에 쓴 돈은 2013년 30억 엔(약 259억 원)이었지만, 이후 100억 엔(약 863억 원)으로 3배 넘게 늘었다. 국가 예산에만 기대지 않고 아지노모토(유명 조미료 회사) 등 민간 기업의 후원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구키도메 다케시 일본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 소장 겸 하이퍼포먼스스포츠센터 이사. 도쿄=유대근 기자

구키도메 다케시 일본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 소장 겸 하이퍼포먼스스포츠센터 이사. 도쿄=유대근 기자

NTC가 생기기 전까지 일본의 대표급 선수들은 여러 도도현부(우리의 광역시도 개념)에 쪼개져 있는 종목별 훈련장에서 연습했다. 이를 한곳에 모아놓은 것이 NTC다. JISS와 NTC는 한 부지 안에 연결돼 있어, 선수들은 과학적 훈련법 등을 제안받아 훈련장에서 바로 적용해볼 수 있다.

중앙집중식 과학 훈련은 효과가 컸다. 구키도메 소장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41개의 메달을 땄는데 40개가 NTC에서 훈련한 종목이었고, 도쿄 올림픽에서 획득한 58개 메달 가운데 80%가량이 이곳에서 훈련한 종목이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2015년에는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부 부처인 스포츠청이 문을 열었다. 이전까지는 문부과학성 내 스포츠국이 관련 정책을 주도했다. 야마모토 쓰요시(42) 주한 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2011년 스포츠 기본법을 제정했고 2012년에는 스포츠 기본계획을 수립했는데 스포츠청은 이런 계획의 일환으로 설립됐다"며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과학에 기반한 고도의 지원을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초대 청장(장관급)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전 수영 선수 스즈키 다이치(56)가 맡았다. 스포츠청 경기스포츠과의 나루세유키 히로시 과장은 "현직인 무루호시 고지 장관도 해머던지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면서 "스포츠인 출신들이 행정을 총괄하니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확실히 높다"고 말했다.

일본 스포츠계 "2024 파리 올림픽도 기대해 볼 만"

일본이 자국 선수들에게 잘 맞는 전략 종목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도 적중했다. 기타지마의 주종목이었던 수영 평영 종목이 대표적이다. 자유형 등에 비해 신체 조건의 영향을 덜 받기에 아시아 선수가 유럽이나 미국 선수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었다.

일본 스키점프의 간판 선수인 다카나시 사라의 경기 모습. 그는 스키점프 월드컵에서 금메달 64개나 따 남녀 통산 역대 최다 금메달 보유자이다. 힌터자르텐=EPA 연합뉴스

일본 스키점프의 간판 선수인 다카나시 사라의 경기 모습. 그는 스키점프 월드컵에서 금메달 64개나 따 남녀 통산 역대 최다 금메달 보유자이다. 힌터자르텐=EPA 연합뉴스

동계 종목 중에는 스키점프가 전략 종목이다. 일본은 2014년과 2018년, 2022년 동계올림픽 스키점프에서 4개의 메달(금메달 1∙은메달 1∙동메달 2)을 땄다. 홍성찬(47) 일본 쓰쿠바대 체육과 교수는 “NTC에 풍동(風動) 실험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선수들은 자세에 따라 바람의 저항을 얼마나 받는지 확인하며 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략 종목 중 하나인 체조도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 예컨대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이동할 때 운동화에 땀이 차 불편하다고 호소하자 곧바로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연구진은 바닥에 구멍을 낸 말랑말랑한 소재의 운동화를 만들어 선수들에게 제공했다.

일본은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종합 3위(금 27·은 14·동 17)를 했다. 안방 이점도 있었지만, 일본 내부에선 "2024년 파리 올림픽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가사하라 부장은 "세계적인 경기력을 다지는 데 10년 정도 걸렸다"면서 "이미 기반을 다져놓은 만큼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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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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