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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 1만5000원어치 먹었다고 수렵되는 비운의 동물, 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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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인간과 동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갈등과 피해가 생기고 있습니다. 갈등의 배경 및 인간과 동물 모두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지만 지난해에만 15만 마리가 포획으로 희생된 동물이 있다. 찻길사고(로드킬)로는 연간 6만 마리가 사라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운의 동물은 바로 고라니다.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으로 지정한 세계적 보호종이다. 사자, 표범, 코알라와 같은 등급이다. 중국에서도 보호종으로, 북한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1984년 7월 유해조수로 지정되면서 총기를 사용한 포획이 허용되고 있다. 고라니에게는 국제적으로는 멸종위기종이면서 국내에서는 유해야생동물이라는 이중적 지위가 부여된 것이다.
국립생태원이 발간한 '한국 고라니'에 따르면 고라니는 우리나라와 중국에 주로 서식하는 토착종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양쯔강 남부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 1만 마리가 살고 있는데 그 수가 줄어 복원사업까지 진행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국내에 살고 있는 고라니 수는 얼마나 될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국내 서식하는 고라니 수는 45만 마리다. 고라니가 ㎢당 8.0마리가 있다고 가정하고 전체 산림 면적을 곱해 계산한 수치다. 반면 고라니 연구자인 김백준 국립생태원 생태신기술팀장은 고라니 수를 10만~100만 마리로 추정했다. 포획이나 로드킬 집계 또한 정확하지 않고 모두 추정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팀장은 "고라니는 산후나 새끼의 치사율이 매우 높다"며 "정확한 조사 없이 개체 수를 단정 짓게 되면 이들의 관리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체 수조차 집계되지 않는 상황에서 매년 15만~20만 마리의 고라니를 현상금까지 줘가며 포획하는 데에는 배경이 있다. 농작물에 피해를 입힌다는 이유에서다. 환경부에 따르면 고라니가 입힌 농작물 피해액은 2018년 25억9,300만 원에서 지난해 11억7,100만 원으로 4년 만에 절반 넘게 줄었다. 반면 피해를 준다며 포획한 수는 같은 기간 16만1,249마리에서 15만3,527마리로 크게 변함이 없다.
이런 가운데 2015년부터 현상금으로 지급된 비용이 고라니로 인한 농작물 피해액보다 많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0년간 고라니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낸 문선희 작가가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의 발표 자료를 토대로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고라니가 입힌 피해액과 현상금 지급액(추정치)을 계산한 결과다. 문 작가에 따르면 2015년 피해액은 20억5,500만 원이었지만 현상금은 30억1,893만 원이 지급됐다. 이 격차는 계속 벌어져 2018년 피해액은 25억9,300만 원인 반면 현상금은 2배에 달하는 52억3,158만 원에 달했다.
문 작가는 "2018년에 총에 맞은 고라니는 1만4,869원어치의 농작물을 먹어 치운 '혐의'로 목숨을 잃었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사냥꾼들에게는 포상금이 꼬박꼬박 지급되지만 정작 손해를 입은 농민들에게는 피해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고라니 현상금은 통상 한 마리당 3만원씩 지급됐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피해 보상 산정액이 10만 원(환경부 고시) 미만인 경우에는 보상에서 제외하도록 돼 있는데, 고라니의 경우 소규모 피해가 반복되는 상황이라 이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고 한다.
고라니를 위협하는 요소는 또 있다. 찻길사고다. 한국도로공사가 5년간(2017~2021년) 발생한 고속도로 동물찻길사고(총 7,467건)를 분석한 결과 사고를 당하는 야생동물의 86%가 고라니였다.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충남야생동물센터에 들어오는 고라니의 약 60% 역시 차량과의 충돌이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센터 재활관리사는 "찻길사고를 당한 고라니는 골절, 장기 및 신경손상 등 심각한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는 경우는 약 5% 수준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구조원인은 △농수로 등 인공구조물 고립(11%) △새끼 고라니가 어미를 잃음(11%) △밭그물 등 인공구조물에 얽힘(10%) △개에게 공격받음(3%) △덫, 총상 등 밀렵 의심(1%) 등의 순이었다. 김 관리사는 "구조된 야생동물의 평균적인 방생률은 40% 수준이지만, 고라니는 20% 정도로 자연 복귀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말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라면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정도로 고라니 개체 수가 남아있는 이유는 뭘까. 고라니의 서식 밀도는 1982년 ㎢당 1.8마리에서 2011년 7.3마리, 2018년에는 8.2마리까지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7.1마리로 소폭 줄었다. 고라니가 전국 강변부터 고산지대에까지 두루 살게 된 것은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같은 포식자와 대륙사슴 같은 경쟁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포획과 로드킬 등으로 수많은 고라니가 목숨을 잃는데도 이 같은 수를 '기적'처럼 유지하는 데에는 한 번에 3, 4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번식능력이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이들의 많은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사람들의 눈에 더 잘 띄는 점도 고라니 수가 많아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게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안심할 수는 없다. 실제 포획된 고라니 수는 2020년 21만5,133마리로 정점을 찍었지만 2021년 16만2,272마리, 지난해 15만3,527마리로 감소 추세에 있다.
전문가들은 고라니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일정 부분 포획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현재 고라니에 대한 정책을 제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개체 수의 조절'이 고라니 개체군의 생태에 대한 과학적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확한 근거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명확한 관리방안 없이 계속 포획한다면 지역적 절멸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김 팀장은 "고라니는 다양한 원인으로 많은 수가 사라지고 있고 질병, 포식, 로드킬에 매우 취약하다"며 "고라니의 정확한 개체 수에 대한 연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농수로에 탈출로를 설치하는 등 로드킬과 인공고립물 구조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농작물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포획 이외에 다양한 방법을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 고라니가 선호하는 지역 주변에 이들이 덜 선호하는 농작물을 선택해 재배하거나 방책을 설치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또 피해가 이미 발생한 경우라면 농민에게 보상하는 제도도 적극 활용될 필요가 있다. 문 작가는 "실제 농가를 방문해보면 농민들은 피해로 인한 현실적인 보상을 원한다"며 "우리의 세금을 현상금이 아닌 고라니와의 공존을 위한 부담을 오롯이 감당하고 있는 농민을 위해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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