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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잃을라" 구조개혁 뒷전... 총선에 갇힌 '성장률 3%'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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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예산안·세법 협의 과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3% 성장론' 등 여야가 모처럼 경제 정책 대결에 들어갔다. 하지만 속살을 뜯어보면 정치권은 나랏돈을 풀지, 조일지 등 단기 처방에만 몰두할 뿐 성장을 위한 뿌리인 구조개혁은 외면하고 있다. 겉은 '경제 걱정', 속은 '총선 방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대표가 3일 제시한 내년 성장률 3%는 긍정 평가할 부분이 없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7% 성장, 박근혜 정부의 4% 잠재성장률 등 보수 정부 전유물이던 성장률 목표 제시를 끌어온 점이 그렇다.
특정 성장률 달성은 인위적이라는 지적을 접고 보면 진보가 경제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는 평가를 누그러뜨리는 행보다. 이 대표가 내놓은 수치는 정부, 한국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예측한 내년 성장률 2.2~2.4%를 앞선다. 주요 기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1.4%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 대표가 3% 성장을 이루기 위해 내세운 해법은 빈약하다. 문재인 정부 내내 이어졌던 확장 재정을 다시 전면 배치한 게 대표적이다. 경기 하강에 대처해 나랏돈을 활용해야 한다는 이 대표 제안은 귀담아들을 구석이 있긴 하지만, 지금 같은 고금리 시기엔 따져볼 부분도 적지 않다.
시중에 돈이 풀리는 재정 지출 증가는 물가 상승 요인이라 고물가로 치솟은 금리를 더 높이거나 고금리 기간을 늘리기 쉽다. 경기를 반짝 살리려다 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 대출자, 자영업자, 기업 등 다방면에 걸쳐 고금리 충격을 심화시키는 셈이다.
확장 재정은 긴축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가 수용하기 어려운 한계도 존재한다. 또 정부가 지닌 예산 증액 동의권을 고려하면 거대 야당 주도로 내년도 예산을 대폭 늘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대표 제안이 '성장 정책'보다 내년 4월 총선을 향한 '정치 구호'에 기울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대표가 다른 3% 성장 수단으로 언급한 임시소비세액공제(임소공제) 역시 임시방편 성격이 짙다. 임소공제는 내년에 소비를 늘린 월급쟁이의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1년만 시행한다는 구상이라 단기 대책에 그치는 데다 소비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염두에 둬야 한다. 확장 재정처럼 물가 상승→고금리 유지를 유발해서다. 이자 부담이 커진 가계가 이 대표 의도대로 소비에 나설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 대표의 3% 성장론을 "건강을 해치는 탕후루 정책"이라며 각 세우는 정부·여당 역시 총선용 경제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14일 윤 대통령까지 가세해 "개인에 큰 손실"이라고 재차 강조한 공매도 금지가 한 예다. 공매도를 두고 기관·외국인 투자자에게 유리하다는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왜 하필 현시점에서 금지 조치를 내렸는지 질문이 따른다.
10일 대통령실이 예고 없이 띄운 주식양도소득세 완화는 정부·여당이 1,400만 주식 투자자를 겨냥한 총선 정책에 집중한다는 지적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여야가 현행 주식양도세 체계를 2024년까지 유지하기로 합의했던 만큼 정부·여당이 올해 기준 완화를 추진할 가능성은 적다는 게 당초 예측이었다.
선거용에 가까운 여야의 경제 정책 방향이 닮은 면은 또 있다. 잠재성장률 외면이다. 한 국가의 노동·자본을 총동원해 물가 상승 없이 달성 가능한 최대 성장률인 잠재성장률은 경제 기초체력으로 통용된다. 2000년대 초반 5% 안팎이던 잠재성장률은 2010년대 후반 2%대로 떨어진 후, 1%대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다.
경제 체질이 바뀌지 않을 경우 '저성장 늪'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지만 민주당 관심은 내년 3% 성장률 달성에만 쏠려있다. 국민의힘 역시 잠재성장률 제고 대책이 없긴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이재명표 3% 성장'에 대응해 공격적 대안 제시보다 방어적 비판 전략만 취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해법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총재는 지난달 "어떻게 하면 저성장을 탈출하는지 다 안다. 구조개혁을 하면 잠재성장률이 2%로 올라간다. 그 선택은 국민과 정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저성장 타개책으로 제기된 구조개혁이 더는 미루기 힘든 마지노선에 다다랐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총재가 새삼 정치권의 역할을 강조한 점도 눈에 띈다. 정치권이 표심을 잃을까 봐 소극적이었던 노동개혁 등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메시지다. 경직적인 임금 체계 해소, 대·중소기업과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 완화 등이 핵심 과제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5년 정도 지나면 1%대 성장률이 자연스러운 시기가 올 것"이라며 "구조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성장률 하락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재명 대표의 3% 성장론은 지출 증가만으론 성장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외면하고 있는데, 여당도 여기에 맞설 잠재성장률 전략이 약해 고전하고 있다"며 "잠재성장률을 올리려면 구조개혁 외에도 배터리처럼 세계 각국이 달려들고 있는 미래 먹거리 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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