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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 자기애

입력
2023.11.15 00:00
26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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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양심 없는 연쇄질문마였다. 신입사원 연수를 받을 때 현직 고위직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약 3일 동안 이뤄진 연수에서 난 모든 연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쉬는 시간이 코앞인데도 질문을 던져서 동기 전체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다음 수업을 들은 적도 있었다. 동기들은 나를 분노 어린 눈빛으로 봤고, 지지리 눈치 없는 나는 그걸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궁금한 것을 끊임없이 물었다.

연수가 끝나고 현업에 배치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할 일 없는 신입사원이던 나는 당시 팀장님 혹은 친해지고 싶은 선배들에게 안면몰수하고 다가가서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았다. 신입사원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처음에 이 직장에 왜 왔는지 등 사적인 질문부터 특정 산업의 전망과 일 잘하는 사원이 되기 위한 방법 등 지금 보면 꽤 귀여운 질문까지 다양했다.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음에도 선배들은 진심 어리게 조언을 해주셨다. 정말 가지각색의 이야기였지만, 공통적인 조언 중 하나는 바로 자기애를 버리란 가르침이었다.

자기애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사전에 따르면 자기애는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일'로 정의된다. 정상적인 수준의 자기애는 자아관에 이롭다. 가뜩이나 비교하기 좋아하는 국민들인데, SNS 발전으로 인해 더욱 쉬워졌다. 정신건강을 위해 나타난 구원자 같다.

하지만 그 안에 갇히는 순간 파멸이 시작된다. 소위 '나르시시즘'이라 불리는 병리적 자기애는 오히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상실과 방어적인 자아 팽창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좋은 자기애는 나를 보호하는 방어막이 되지만, 과한 자기애는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괴물로 변이시켜버리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선배들은 왜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인 나에게 자기애를 버리라고 조언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이니까, 더더욱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 있지 않았을까. 호기심과 욕심이 많은 만큼 귀를 닫는 순간 독선적으로 변할 테고, 그러면 결국 "세상이 뭐라 해도 내가 옳다"는 좁은 세계관에 갇힌 천둥벌거숭이가 됐을 거다. 나는 능력이 좋은데,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는다는 바보 같은 혼잣말과 함께.

세상은 우리에게 빚진 게 없다. 그렇기에 우리를 특별대우할 이유도 없다.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내가 맞는데 세상이 억지로 까내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높은 자기애의 신호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기애를 죽여야 한다. 필터 버블에 갇혀 자기애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요즘을 고려하면, 자기애를 낮추고자 마음먹어야 겨우 균형이 맞춰진다. 신입사원이 들은 조언이지만, 리더에게도 유효하다.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감언이설 하는 간신들이 많아진다. 그 감언이설은 과한 자기애라는 충치만 남기는 탕후루다. 결국 나쁜 리더십과 조직의 실패로 이어진다.

자기애에 갇혀 살면 편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만 살면 파멸하기 마련이다. 이 마음가짐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 하나를 붙여놨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자기애를 버려야, 내가 산다." 내 책상에 붙어있는 메모다. 자기애를 버리면 스스로가 보인다. 스스로가 보여야 반성할 수 있다.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동기들의 쉬는 시간을 없앤 과거의 내가 부끄러운 나처럼 말이다.


구현모 뉴스레터 어거스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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