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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잘하는 사람보다 말로 과제 따는 사람이 인정받는 구조부터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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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도 R&D 예산 삭감으로 공론화된 'R&D 비효율화의 효율화'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합니다.
정부는 연구개발(R&D) 효율화를 위해 예산 삭감을 선택했지만 정작 과학기술계에선 비효율의 주범은 따로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삭감 규모가 큰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자들은 30년 가까이 논란이 지속돼온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지목하고 있다.
14일 25개 출연연을 소관기관으로 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올해 전체 출연연 예산은 5조8,655억 원인데, 이 중 PBS를 통해 정부수탁과제로 확보한 예산이 2조7,967억 원(47.7%)으로 가장 많다. 정부의 출연금(2조2,466억 원·38.3%)이나 민간수탁과제(8,222억 원·14.0%) 예산 비중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
PBS는 국가연구사업을 프로젝트 단위의 경쟁 체제로 운영·관리하는 제도로, 1996년 도입됐다. 1990년대 이후 대학이나 민간의 연구 역량이 높아져 출연연에도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연구 성과와 관련 없이 정부 출연금으로 인건비를 충당하는 방식의 예산 편성이 어려워졌다. 제도 도입 이후 출연연 연구자들이 경쟁적으로 연구과제를 수주해 직접 인건비를 확보하게 되면서 단기적으론 연구 효율성과 경쟁력이 증가해 여태 제도가 존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PBS의 수주 경쟁 때문에 장기적 관점의 대형 국책연구보다 단기 성과를 노린 파편화한 연구가 주류가 됐다는 비판이 커졌다. 이어확 '국가 과학기술 바로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 공동대표는 "연구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수사(修辭)를 앞세워 과제를 잘 따오는 사람이 더 인정받는 구조"라면서 "과제 책임자들이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대관 업무를 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임기철 광주과학기술원(GIST) 총장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PBS를 가리켜 "연구를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보다 인건비로 인한 긴장감을 가져오는 제도"라고 꼬집었다.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누리호 모델'이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중심이 돼 12년간 2조 원을 투입해 발사체 개발에 성공했고, 여기에 300여개 기업이 참여했다"면서 "항우연과 기업들의 R&D가 제각각 진행됐으면 누리호는 개발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묶음 예산' 형태로 예산을 키워 기관에 직접 배정하고 권한과 책임을 넘기는 방식을 누리호 이외의 출연연 주도 국가임무형 전략기술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진 않다. 출연연마다, 개별 연구자마다 입장이 달라 제도 개선을 위한 동력이 한데 모이지 않는 탓이다. 25개 출연연 중 항우연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PBS 비중이 70%가 넘는 반면 PBS 비중이 10%대에 머물고 정부 출연금에 의지하는 연구기관도 있다.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선 단기간에 책임연구자로 성과를 낼 수 있는 PBS 제도를 선호하는 문화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정부에서도 전면적인 제도 철폐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다.
그래도 정부가 재정 관점에서 R&D 효율화를 내세우며 예산부터 삭감하기 전에 PBS의 비효율부터 개선하려고 노력했어야 한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안동만 과학기술연우연합회장은 "가령 출연연들이 참여할 국가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연구들은 예산을 삭감한다는 방식이었다면 반발이 지금보단 적었을 것"이라면서 "이제라도 기업보다 국가가 나서야 하는 분야에서 출연연의 역할을 정립하고, 구성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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