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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최강’ 전설, 일본 동네 레슬링장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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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지금 활약하는 선수들 대부분은 아주 어려서부터 운동을 시작했어요. 동네에 레슬링 교실이 많으니까 자연스레 접하며 꿈을 키운 거죠.
일본 국가대표급 선수의 경기력 향상을 총괄하는 가사하라 겐지 일본올림픽위원회(JOC) 강화부장은 지난달 1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여자 레슬링이 세계 최고가 된 비결로 ‘환경’을 꼽았다. 한국에선 레슬링부가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면 주변 추천으로 운동을 접하게 되지만, 일본 레슬러들은 초등학교 또는 더 일찍 운동에 입문한다는 설명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세 번이나 따내며 ‘영장류 최강 여성’이란 별명이 붙은 요시다 사오리(41∙은퇴)는 세 살 때 미에현의 레슬링 교실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세계 레슬링 챔피언십 여자 자유형 62㎏급에서 우승한 ‘신성’ 노노카 오자키(20)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동네 레슬링장의 매트를 뒹굴며 재미를 붙였다.
일본의 유소년 레슬링연맹 등에 따르면 전국의 레슬링 클럽은 287개이고, 고교 레슬링부는 347개(남자부 235개∙여자부 112개)나 된다. 학교든, 동네든 아이들 주변에 시설이 있어야 운동을 접하고 재능도 꽃피울 수 있다는 얘기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금맥이 끊긴 우리 레슬링계 입장에선 부러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일본에는 레슬링장만 많은 게 아니다. 거의 모든 종목의 시설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갖춰졌다. 1964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생활 체육 인프라 구축에 본격적으로 돈을 쓰기 시작해 꾸준히 투자를 해왔다. 아이들이 TV를 보다가 특정 종목 선수가 멋있어 보이면 언제든 그 운동을 시작할 만한 환경이 구축돼 있는 셈이다.
일본이 수영 강국이 된 이유도 레슬링과 비슷하다. 수영선수 출신인 육현철 한국체대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일본에선 수영이 필수 교과목이기 때문에 초중고교의 90%에 수영장이 있다”며 “우리나라는 세월호 참사 이후 초교 3~6학년을 대상으로 생존 수영을 교육하겠다고 했지만, 초중고의 수영장 설치율은 1.3%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일본에는 인구 2만9,000명당 수영장 1개가 있지만 한국엔 12만 6,000명당 1개가 있다. 육 교수는 “공공 수영장이 부족하니 아이들이 사설 수영장에서 레슨을 받아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예산이 여유롭지 못한 공립학교에도 체육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도쿄 도립 스기나미소고 고교의 후지모토 신야(58) 교장은 “우리 학교에는 축구를 할 수 있는 운동장과 농구∙배구 등을 하는 종합체육관, 검도부 등이 쓰는 작은 체육관과 유도장, 수영장, 궁도장, 테니스장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공립 고교 대부분은 이 정도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게 후지모토 교장의 설명이다. 지은 지 오래된 시설도 많지만 일본 특유의 세심한 관리 덕에 설비는 대부분 깨끗한 편이다.
학교마다 여러 운동부를 운영하기에 특정 종목 선수가 되려고 이사 갈 필요가 없다는 점도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국내 유소년 배구부를 지도하는 한 코치는 “배구부가 없는 지역이 많다 보니 배구를 하려면 멀리 떨어진 학교 근처로 위장전입한 뒤 2시간씩 등하교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털어놨다.
비교적 적극적으로 교내 시설을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점도 일본 학교의 특징이다. 일본 초등학생의 7~8%가 소속돼 운동을 배우는 공익재단 스포츠소년단의 엔도 게이이치 부본부장은 "운동장 등을 공짜로 빌려주는 학교가 많아 아이들이 운동을 배울 때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축구의 도시’ 시즈오카는 특히 학교 시설 개방에 적극적이다. 한국 학교들은 운동장과 체육관 등을 열었다가 사고가 나면 학교장이 책임을 질 수도 있어서 개방에 소극적이다. 반면 시즈오카 시립 히가시토요다중학교의 다나카 가카즈미 교감은 “방과 후 학생들의 운동부 활동이 끝나면 주민들이 시설을 쓸 수 있다”면서 “시설 개방 시간에 관리 책임은 시즈오카시에 있기에 학교로선 큰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시즈오카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아들이 유학 생활을 한 박병춘 서울 예림디자인고 교사는 “일본 학교의 운동장은 밤늦게까지 비어 있는 틈이 없다. 한 팀이 운동을 끝내면 다른 팀이 들어간다”면서 “일본 스포츠의 저변이 넓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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