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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 대기표

입력
2023.11.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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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은퇴자 마을 선시티 홈페이지

은퇴자 마을 선시티 홈페이지

머리가 흰 노인이 모여 사는 마을이란 뜻의 ‘실버타운’(Silver Town)은 한국에서만 쓰는 영어 단어다. 미국에선 60세 이상 은퇴자를 위한 주거와 식사, 건강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단지 또는 공동체엔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라는 용어를 쓴다. 최초의 CCRC는 1960년 애리조나주에서 분양된 선시티(Sun City)다. 활기찬 은퇴 생활을 모토로 내건 선시티엔 현재 4만 명 가까이 살고 있는데 골프장은 11개, 레크리에이션센터는 7개나 된다. 미국엔 1,000가구가 넘는 이런 CCRC만 3,000여 곳에 달한다.

□ 우리나라 최초의 실버타운은 1988년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서 문을 연 유당마을이다. 당시만 해도 ‘내 집에서 자식과 함께 살고 싶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때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요양시설과 구별이 잘 안 되는 것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며 지금 실버타운 중엔 대기자가 많아 못 들어가는 곳도 많다.

□ 현재 최고가 실버타운으로 꼽히는 곳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더클래식500’이다. 보증금 9억 원에 매월 관리비 등으로 500만 원(식사 40회 기준) 이상을 내야 하는데도 희망자가 많아 입주는 하늘의 별따기다. 더시그넘하우스, 서울시니어스강남타워, 삼성노블카운티 등도 3~5년 기다려야 한다. 그만큼 수요는 큰데 공급은 부족한 셈이다. 최근엔 자산관리 상담까지 해주는 KB골든라이프센터 등 금융기관에서 세운 시설들에도 대기자가 줄을 섰다.

□ 서울시와 강원도가 서울에서 은퇴한 5060세대가 지방에서 인생 2막을 설계할 수 있도록 귀촌 신도시인 ‘골드시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삼척에 병원과 도서관을 갖춘 2,000여 가구의 귀촌 신도시를 만든다고 한다. 25평형이 4억 원대인 분양가 논란도 있지만 은퇴자들에게 선택 폭이 커진 건 긍정적이다. 내년엔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한다. 그리고 내후년엔 노인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저출산도 문제지만 고령화에 대해 우리 사회의 대비가 너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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