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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는 유사과학을 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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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로봇, 우주가 더는 멀지 않은 시대입니다. 다소 낯설지만 매혹적인 그 세계의 문을 열어 줄 SF 문학과 과학 서적을 소개합니다. SF 평론가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해 온 심완선이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유사과학은 과학처럼 보이더라도 과학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라고 정리할 수 있다. SF는 흔히 ‘과학소설’로 풀이되지만 따지자면 유사과학의 성격을 띤다. 과학은 오로지 사실에 부합하고자 한다. SF는 온갖 믿음, 욕망, 환상, 가능성에 입성을 허용한다. 자연히 SF에는 과학의 수질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흙탕물이 즐비하다. 여기는 타임머신과 화성인과 초광속 엔진이 터줏대감으로 존재하는 세계다. SF 작가들은 과학적으로 귀신의 위치를 측정하고, 사탄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흡혈귀를 유전공학으로 복원한다. 사실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쓴다. 과학자가 SF를 만들 수는 있지만, 과학자의 자세를 유지해서는 SF를 쓰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SF를 읽다 보면 ‘틀린 과학’을 즐기는 법을 익히게 된다. SF 작가는 현실과 다른 방식의 법칙이 작동하는 세계를 지어낸다. 예를 들어 테드 창의 '옴팔로스'는 언뜻 비과학적인 창조론자로 가득한 세상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알고 보면 이들 세계는 독자의 현실과 달리 신의 존재가 물질적으로 입증된 곳이다. 화자의 내적 갈등은 독자가 익숙한 ‘과학’의 범주를 벗어나면서도 과학적이기 때문에 색다르다.
덕분에 대놓고 유사과학을 테마로 삼은 SF 앤솔러지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로 SF답겠다는 생각을 했다. '태초에 외계인이 지구를 평평하게 창조하였으니'는 첫 단편 '개벽'부터 “태초에 외계인이 지구를 평평하게 창조하였다”는 말로 시작한다. 마지막 단편 '유사과학소설작가연맹 탈회의 변'에서 ‘작가연맹’ 작가들은 인류가 마주했던 끔찍한 역사적 사실을 극복할 수 있도록 무해하게 가공된 역사를 퍼뜨리는 일을 한다. 각종 유사과학이 쉽게 힘을 얻는 이유는 그것이 인류의 무의식적 기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뻔뻔해서 웃기지만 사실 웃을 일만은 아닌 허구다. 1950년대 미국 SF 잡지는 외계인, 미확인비행물체(UFO), 초능력 등의 초과학을 진지한 필체로 게재하곤 했다. ‘과학적인’ SF를 추구하며 하드 SF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편집장 존 W. 캠벨의 영향이었다. 캠벨의 친구이자 SF 작가였던 론 허버드는 결국 사이비 종교로 유명한 ‘사이언톨로지’를 창시했다. 이 앤솔러지의 유사과학도 사람의 빈틈을 파고드는 행위와 종종 연결된다. “결국은 사기꾼, 불안해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서 돈 버는 간사한 치들”(190쪽)이다. “불안할 때 사주 보면 다 맞는 소리로”(206쪽) 들리는 법이다.
다만 SF는 자신이 진짜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솔직하다. '유사 기를 불어넣어드립니다'의 주인공은 자신이 외계인이긴 해도 ‘기 치료’는 모르고, 그를 찾는 사람들도 진짜로 ‘기’를 기대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간판에 ‘유사’라는 글자를 붙인다. 이는 SF를 만드는 태도와 비슷하다. 이 앤솔러지는 유사과학을 믿지 않고, 믿으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즐길 수 있도록 가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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