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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낼 수 없는 이야기의 맥박

입력
2023.11.16 04:30
20면

<추천작 9> 구병모 '있을 법한 모든 것'

편집자주

※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6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11월 하순 발표합니다.

구병모 작가. ⓒ서유석

구병모 작가. ⓒ서유석

구병모의 소설집 '있을 법한 모든 것'에는 피가 도는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근미래가 등장하는 작품들에 대해 기계의 서늘한 온도가 아닌 너무나 동물적인 피가 끓는다니, 무슨 말일까.

먼저 기후 위기로 인해 인간이 살만한 땅이 사라진 까닭에 통행료가 상당한 수준으로 오르고, 어느덧 이동 그 자체가 특권층만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영성을 통해 이동을 시도하는 이들의 이야기 ‘이동과 정동’의 경우. 화물차를 운송하는 주인공 ‘얼’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려는 이들이 남긴 “당신도 움직이기를”이란 말을 새긴다. 소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경계선 안쪽에 남기로 이미 결정했음에도 전염병과 가난으로부터 탈출하는 어린아이를 몰래 돕는 ‘얼’의 행적을 작정한 듯 놓치지 않는다.

또 다른 작품 ‘니니코라치우푼타’는 어떤가. 이 소설에는 노인 돌봄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국가를 위협하는 정도가 된 ‘국민 중위 연령 61세’ 시대, 요양원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로 여생을 보내는 ‘엄마’와의 일화가 등장한다. 디지털 기술의 지배로 점점 그 입지가 좁아지는 중인 특수 분장 업계 종사자 ‘나’는 ‘니니코라치우푼타’라는 외계인을 죽기 전에 만나고 싶다는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선배’를 공들여 분장시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마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의 죽음 이후에야 딸이 참여했던 영화의 제목들이 섞여 만들어진 이미지가 곧 ‘니니코라치우푼타’의 정체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에서 소설은 감동을 남기는데, 이는 동시에 아무리 무언가가 쉽게 사라져가는 시대일지라도 우리 삶에 한번 있었던 것은 결코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얘기를 소설이 건네는 것으로 읽힌다.

구병모 소설집 '있을 법한 모든 것'

구병모 소설집 '있을 법한 모든 것'

요컨대 구병모의 소설 속 인물들은 문제 많은 세상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어떻게든 ‘행동’하는 편에, 한번 생겨났다면 누군가의 시선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계속 거기 있을 수밖에 없는 것들에 ‘애착’하는 편에 있고자 한다. 그러니 아직은 이야기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인간 존재에 대한 고뇌 역시도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아무리 엉망진창일지라도 세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쉽게 끝나지 않는 세상은 이야기를 끝장내지 않으려는 결단 속에서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끝낼 수 없다.’ 구병모는 이를 망설임 없이 쓴다. 만연체를 동원해서라도 소설에 피를 돌게 하기 위한 응급처치를 한다. 이야기의 맥박은 이렇게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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