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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가죽' 쓰고 '굴'로 들어간 BTS 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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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성상민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의 첫 솔로 앨범 '골든'의 타이틀 곡 '스탠딩 넥스트 유'를 처음 듣고 한 생각은 ‘작정했구나’였다. 정국에게 빌보드 인기곡 차트인 '핫100' 첫 1위를 안겨준 '세븐'을 만든 프로듀서 앤드루 와트와 다시 한번 손을 잡은 노래는 시작부터 넘치는 야망을 조금도 감출 생각이 없다. 기타, 베이스, 드럼, 퍼커션, 신시사이저, 관악기 등 곡에 사용된 모든 소리를 대폭발시키며 웅장한 신호탄을 쏘아 올린 노래는 곡의 메인 리프가 시작되는 순간 한 템포 숨을 고르며 숨겨둔 진짜 목적을 드러낸다. '스탠딩 넥스트 유'는 비트와 리듬, 멜로디 모두 뇌쇄적인 기운을 몇 번이고 덧발랐다. 그렇게 불길이라도 네 곁이면 뛰어들겠다고, 우리는 우리를 시험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살아남을 거라고 곡이 진행되는 내내 뜨거운 사랑을 토해낸다.
음악을 첫 단추로 한 정국의 야망은 뮤직비디오와 앨범을 통해 좀 더 구체화한다. 뮤직비디오 속 정국은 어떤 상황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바로 눈앞에 그토록 갈망하는 사람이 서 있어도 무대 앞이 온통 난장판이 되어도 터질 듯한 에너지를 지그시 누른 채 느긋한 동작만을 유지하며 묵직한 시선과 손짓으로 화면을 제압한다. 숨 막히도록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요동치는 화자의 내면은 때때로 정제된 무대와 대비되는 단체 액션신이나 베이스와 드럼 소리에 맞춰 작렬하는 K팝 10년 경력에 빛나는 군무로 승화된다.
앨범은 좀 더 정성스럽다. 마이클 잭슨에서 위켄드까지, 아마 앨범을 듣는 사람의 연령대나 청취 이력에 따라 수많은 팝 아이콘이 번갈아 등장할 것이다. 앨범 발매 전 공개한 '세븐'과 '3D'로 크레이그 데이비드와 20세기 초 전성기를 구가하던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소환한 것처럼 앨범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지금의 팝 신을 한번쯤은 사로잡았던 다양한 요소가 고르게 분포돼 있다. 레게 톤이나 아프로비트를 위시한 트렌디하고 이국적인 사운드와 중독성 있는 기타 리프를 동력으로 삼는 깔끔하게 똑떨어지는 팝, 깊은 곳에서 길어낸 절절함 어린 팝 발라드까지. 전곡을 영어로 소화한 정국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노래가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그에 맞는 창법과 목소리로 새 옷을 갈아입는다. 수록곡 가운데 '스탠딩 넥스트 유'와 '헤이트 유' 두 곡을 비교해 듣는 것만으로 정국이 이 앨범의 보컬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느껴질 정도다.
이런 행보를 모두 종합한 결과, 앨범이 가리키는 야망의 방향은 더없이 뚜렷하다. 이건 당신들이 지금까지 당연하게 즐겨온 방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걸 보여 주겠다는 선언이다. 목표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이상 '골든'으로 정국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취는 단순히 음악 차트 1위나 무슨 어워드 수상일 수가 없다. 정국은 이 앨범을 통해 팝 음악을 즐기는 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젊은 팝 스타이자 섹스 심벌로서 자리 잡고자 한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출발 신호는 이미 떨어졌다. 이제 남은 건 전진뿐이다. 그가 몸담은 BTS가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정국의 도전은 K팝 성장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에게 꽤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여러 면에서 주류 팝의 대안으로 환영받아온 K팝의 중심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팝의 정수를 고스란히 계승하는 아이콘이 탄생한 셈이기 때문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처럼 정국은 거기에 호랑이 가죽까지 뒤집어쓰고 굴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기를 택했다. 그간 K팝은 교포로 접점을 만들었다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며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까지 배웠다. 다국적 멤버를 꾸렸다가 이제는 도전을 원하는 나라의 음악 그 자체가 되었다. 이건 지금까지 없었던 형태의 승부다. 낯선 언어와 퍼포먼스로 이방인 취급을 받던 음악 조류의 한가운데 한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던 남성 솔로 팝 스타의 자리를 노리는 '젊은 피' 하나가 야심 차게 피어났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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