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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격하는 소설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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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6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11월 하순 발표합니다.
이미상의 소설은 우리가 덮어쓰고 있는 말의 가면을 향해 빠르고 거칠게 진격해 온다. 당혹스럽기 그지없는데, 여기에는 적당한 타협이 없다. 벗겨지고 흘러내리는 가면의 행렬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말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힘 앞에서 숨을 곳을 찾기 힘들다. 말을 둘러싸고 있는 오니(汚泥)와 먼지, 욕망의 분비물들은 이미상 소설의 불편하게 꼬이고 뒤엉킨 겹의 서사가 시작되고 흘러나오는 자리다.
이런 소설이 쓰이는 자리가 안온하고 정돈된 책상일 수는 없다. '티 나지 않는 밤'의 간호사 수진은 낮에는 병원의 원장이 느닷없이 쏘아 대는 분무기의 물을 얼굴에 맞고, 밤에는 단어 공책을 옆에 두고 소설을 쓴다. 수진의 집필 공간은 코딱지만 한 베란다의 세탁기 위에 신발 박스를 올려 높이를 맞춘 스탠딩 책상이다. 영상 ‘작업’을 한다는 ‘예술가’ 남성이 수진의 좁은 방을 차지하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수진은 선 채로 올록볼록한 세탁기 호스를 맨발로 꾹꾹 밟으며 단어 공책을 박스 위에 올리고 몇 자 적었다.” 싱크대 안에는 수진이 육 년간 쓴 단편소설 열두 편의 ‘종이 뭉치’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종이 뭉치라 불렀고,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내리려 했고 (…) 그것이 자신의 투쟁임을, 비밀스러운 투쟁임을 알았다.” ‘밤, 베란다, 쓰기’는 수진이 힘겹게 찾아낸 투쟁의 자세이겠지만, 이미상 소설이 ‘예술’, ‘작업’, ‘일개 노동’ 등등 고상과 위악, 자기 모멸로 이루어진 겹겹의 가면들을 끌어내리며 해 보고자 하는 다른 글쓰기의 장소와 자세를 무심하고도 절박하게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그곳은 한강공원 화장실에 말 없이 출몰하는 ‘임테기 천사’, 도서관에 반납하지 않은 책의 등을 매일 아침 노려보기만 하는 구지경의 ‘낱장-잡지식’, 윤리와 재현의 도덕 경찰로부터 추방된 이중 작가 초롱이 떠올리는 소설의 제3의 원,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의 수치를 가장 연약한 자들 곁에서 견디고 있는 모래 고모와 무경처럼 나쁜 세상의 징후를 앓으며, 행동 및 이야기의 씨를 품은 채 침묵 속에서 들끓고 있는 인물과 사물을 위한 책상이라는 점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무정형의 ‘비(非)장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들끓음만으로도 새로운 이야기의 길이 열리고, 강렬한 소설의 목소리가 일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미상 소설이 새로운 조합과 배치의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는 언어와 서사의 힘은 단연 예외적이다. 그 힘의 방향을 짐작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이미상 소설을 읽는 특별한 즐거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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