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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과 야수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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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코로나 시기의 극심한 침체 뒤 이어진 활황기에 개인 투자가 늘면서 ‘야수(野獸)의 심장’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끝 모를 주가폭락 시기에 오를 걸 믿고 두려움을 이기고 사는 걸 일컬어 '야수의 심장을 가졌다'고 한단다. 영어의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s)이 이런 우리말로 해석됐다는 게 유력하다. 2000년대 한 한국은행 총재는 '야성적 충동'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 ‘오만과 편견’이나 '로빈슨 크루소' 같은 19세기 영국소설에 생기나 활력이라는 의미로 등장하지만, 경제 용어로 대중화한 건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공이 크다. 그는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경제의 불확실성 시기에 투자자나 기업가의 투자를 이끄는 힘은 치밀하게 계산된 기대보다 충동적인 낙관에 기초한다면서 애니멀 스피릿의 결과라고 썼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기적인 영리 추구)’과 궤를 달리하는 시장과 경제를 움직이는 또 다른 손으로 봤다.
□노벨상 수상자인 조지 애커로프 미 버클리대 교수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금융위기 직후 펴낸 공저인 '애니멀 스피릿'에서 인간심리가 경제를 어떻게 움직이며, 글로벌 자본주의에 왜 문제가 되는지를 다뤘다. 케인스에서 나아간 이들의 애니멀 스피릿은 확신과 공정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확신은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표현하면서 “중요한 비즈니스 결정은 배짱(Gut)에서 나왔다”는 잭 웰치(제너럴 일렉트릭 전 CEO) 말을 인용했다. 또 투자나 거래에 대한 확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게 공정이라는 것이다.
□‘야수의 심장’으로 뛰어든다는 2차전지 대표주들의 단기 급등과 버블 논란, 미국 채권 금리 상승, 천문학적 액수의 반대매매 등으로 주가가 폭락하자 정부가 지난 4일 공매도를 기습적으로 금지했다. 외국계 증권사의 불법 공매도를 이유로 들었다. 총선용 비판을 무릅쓰고 불공정 게임이라는 개인투자자 원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라덕연 사태부터 영풍제지까지 연이은 시세 조작 사건도 야수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했을 것이다. 반면 닷컴버블이나 2008년 금융위기는 애니멀 스피릿의 부정적 측면으로 거론된다. 야수의 심장을 잘 관리하는 것도 정부의 고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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