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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있는 대구가 '세상의 중심'인데 서울을 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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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서울로 떠날 때 저는 남기로 했어요. 제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니까요!”
지난 2일 대구시 한 카페에서 만난 이진주(26)씨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필리핀 엄마와 한국인 아빠를 둔 그는 필리핀에서 태어나 7세 때 대구로 이사 온 뒤 20년 가까이 쭉 살고 있다. 몸담고 있는 직장도 대구의 유아교육용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인 ‘이프아이’다. 회사 경영기획팀에서 영상 제작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그도 한때는 지역의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상경’을 꿈꿨다. 영상 관련 산업의 경우 서울이 훨씬 활성화된 데다 친한 친구들이 다 서울로 떠나 자신도 가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을 바꿨다.
“살인적인 집값에, 연고도 없는 곳에서 고생할 바엔 그 정성으로 대구에서 살아보자고 결심했죠.”
서울로 간 친구들로부터 출근길 ‘교통지옥’이나 팍팍한 삶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면 대구에 남은 게 백 번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에게서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 그의 자취 집에서 회사까지 출근길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의 주 업무인 SNS 마케팅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굳이 서울로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이씨는 또한 도시철도와 시내버스 교통편 등이 서울 못지않게 잘 갖춰진 도시가 대구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란 말은 비유적인 표현만이 아니다. 실제 대구가 ‘사통팔달’이란 의미도 담겨 있다.
한창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에 지역에서 적성에 맞는 일을 찾게 된 것도 정착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대학에서 그래픽 영상을 전공한 그는 2018년 졸업 후 여러 아르바이트를 거쳐 상품 및 광고기획사, 영상편집 업체, 파티 스튜디오 회사,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등에서 두루 일했다. 특히 홈파티 스튜디오 업체 근무 시절을 잊을 수 없다.
이곳에선 예비신부와 20대 젊은이들이 생일이나 결혼, 새해나 크리스마스 등 기념일을 맞아 여는 파티가 끊이지 않았다. 또래들이 서울로 갈 때, 대구에 남아 삶의 터전을 일구고, 나름의 행복을 만들어 간다는 공통분모를 지닌 이들이었다. 이씨는 “손님들 중에서도 특히 젊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더 신이 나서 일을 했다”고 미소 지었다. 그의 손을 거친 다양한 파티 ‘작품’을 본 사람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기뻐하거나 놀라는 반응을 지켜보는 일에도 보람을 느꼈다.
파티 스튜디오 업체가 저녁마다 청년을 위한 무료 특강을 연 것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회사 대표는 ‘청년들이 대구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돕는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삶’ ‘스트레스 관리법’ ‘MBTI별 향수 만들기’ 등을 강연하는 조향사와 색채심리상담사 등이 지역의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20명 안팎의 청년들은 늘 강연자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이씨는 “특강 덕분에 지역에 남은 청년들끼리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협력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행정안전부가 청년을 채용하는 지역 기업에 인건비(월 160만 원)를 2년간 보조하는 제도의 덕도 봤다. 이 제도가 있었기에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세한 규모의 스튜디오가 이씨를 채용할 수 있었고, 그는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배웠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행안부가 주최하는 청년일자리사업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출품작은 대학 졸업 후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비롯해 회사를 옮겨 다니며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과 자신의 이야기를 압축한 동영상이었다.
그는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 중 하나로 ‘청년의 날’을 맞아 무료로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는 행사를 꼽는다. 접수 3시간 만에 44명이나 몰려든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씨는 “아직 자신의 일을 찾지 못한, 과거의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청년들을 찍어주면서 소통하던 때의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지금의 ‘대구살이’에 만족하고 있지만 연봉만 생각하면 또 마음이 흔들린다. 대구에서 여러 회사를 다녔지만 연봉이 3,000만 원 넘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지역 청년들의 보수도 서울 못지않게 정상화될 거란 믿음을 갖고 산다.
“우리 지역 청년들과 소통할 때면 많은 생각이 들곤 해요. 비슷한 처지에 서로 공감하고 위로도 얻죠. 함께 고민을 해결하면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언젠가는 바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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