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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와 은행보다 더 큰 도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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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을 터는 것은 죄악이지만 은행을 설립하는 것은 더 심각한 죄악이다."
스페인 영화 '맨 오브 액션'의 첫 문구다. 2차 세계대전 전후 노동자를 착취하고 불평등을 야기하는 은행을 털어 혁명을 꾀하는 한 무정부주의자의 실화가 바탕이다. 저 문장은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대표작 '서푼짜리 오페라' 속 대사를 변주했다. "누가 더 큰 도둑인가? 은행을 턴 사람과 은행을 세운 사람 중에서!"
#"은행은 맑은 날에 우산을 빌려주고 비 오는 날에 뺏어가지."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명대사다. 이런 것도 있다. "여긴 은행이에요. '부하의 공적은 상사의 것, 상사의 실패는 부하의 책임'. 과장님이 제일 잘 알고 있는 말이잖아요." 역대급 시청률 드라마답게 정곡을 찌르며 귀에 박힌다. 은행과 정치권력의 야합, 부조리를 바로잡으려는 은행원의 분투를 담았다.
공교롭게도 두 얘기의 시발은 은행의 대출 거부다. 아픈 아버지의 약을 사기 위해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갔다가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쫓겨난 아들, 운영하던 나사 공장이 경영난에 빠졌으나 대출을 거절당한 아버지를 목도한 아들이 각각 주인공이다. 결국 두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진 유년의 기억이 은행을 향한 반감의 뿌리다.
#"죽도록 일해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은행 종노릇하는 것 같다."
최근 대통령 말씀이다. 빚에 허덕이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대변했다. 은행들은 득달같이 후속 조치를 쏟아냈다. 연초 흥행한 '은행 돈 잔치' 발언의 속편 격이라 '안 봐도 비디오'다. 액면만 따지면 틀린 내용은 없다. 현실을 풍자한 대중문화 작품 속 대사라면, 장삼이사의 술자리 넋두리라면 공감할 텐데, 현실을 정색한 화자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두 가지가 아쉽다.
1. 거칠다. 이번 고금리의 원인은 글로벌 통화 긴축이다. 은행이 의도한 게 아니다. 자유 시장 경제는 경제 주체 간 계약으로 작동한다. '자유' 신봉자를 수없이 자처한 만큼 설사 전언이라도 '종노릇' 비유는 걸러야 했다. 현재의 과점 체제는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건전성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 아래 대형 은행을 육성한 결과다. 은행은 상법상 주주가 있는 엄연한 주식회사다. '사촌이 땅 사면' 심리에 기대 은행을 공공의 적으로 모는 건 불필요한 갈등만 유발한다. "차분한 변화" 기조대로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면 될 일이다.
2. 네 탓만 있다. 금융의 규칙을 만드는 건 정부다. '자영업자 위기설'은 진작부터 나왔다. 그때마다 당국 응답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다. '돈 잔치' 발언 후 꾸렸던 전담반(TF)의 성과가 뭔지 아리송하다. 집 구매 목적의 대출이 늘어 가계부채를 키웠다는 의심을 받는다. 이에 대출 금리 인상 지침을 내린 건 당국이다. "정부의 시장 왜곡" "기준금리 위에 '관치금리'" 얘기가 떠돈다. '죽도록 일해 번 돈'인데 월급은 못 따라가는 물가, 여전한 세금 부담, 다시 올라 '영끌'을 부추기는 집값의 책임은 또 누구를 추궁할지 궁금하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브레히트의 대사를 통해 강도와 은행을 넘어 더 큰 도둑이 누구인지 묻는다. 당나라 정치인 한유는 지도자에게 충고한다. '자기에 대한 요구는 엄격하고 빈틈이 없어야 하고 남에 대한 요구는 가볍고 간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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