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나무와 구실잣밤나무

입력
2023.11.08 04:30
27면

식물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개암나무의 잎. ⓒ국립수목원(이동혁)

개암나무의 잎. ⓒ국립수목원(이동혁)

가을이 깊어갑니다. 비 온 후 한층 서늘해진 기운과 기품을 더해가는 나무들의 가을빛이 얼마나 고운지 고맙고 좋은 마음 절로 드는 나날입니다. 도심의 빌딩으로 출근하면서 평생을 식물로 둘러싸인 수목원으로 출근했던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했던지 새삼 깨닫는 나날이지만 그래서 창밖 알록하니 단풍 든 가로수나 흩날리는 낙엽 하나가 더 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개암나무와 구실잣밤나무의 공통점은 맛이 아주 고소한 열매가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곁에 두고 배고픔을 달래기도 하고 간식으로 먹던 열매이지만 이제 점차 달고 큰 먹거리에 밀려났습니다.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면 개암은 '개밤' 구슬처럼 작은 잣밤은 '잡밤'으로 밤과 비교해 부족하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밤나무보다 대우를 받지 못했던 설움도 같습니다.

개암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고 낙엽지는 작은키나무입니다. 혹 개암나무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어릴 때 뒷산에서 깨물어 먹던 고소한 맛의 깨끔 열매, 그래도 떠오르는 것이 없으시다면 옛이야기에 날이 저물어 피한 집이 도깨비들이 모인 곳이었고, 천장으로 몸을 피해 숨어 있다가 시장한 생각에 산에서 주워 넣었던 열매를 꺼내어 깨물었는데 그때 나는 "딱" 하는 소리에 도깨비들이 도망가고 도깨비방망이와 금은보화를 가지고 돌아온다는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열매가 바로 개암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헤이즐넛은 서양 개암이라고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였으나 우거진 숲의 그늘에 밀려나고, 아무도 찾아 심어주지도 않으니 점차 우리가 개암나무를 만나 그 고소함을 느낄 확률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구실잣밤나무 ⓒ국립수목원(정수영)

구실잣밤나무 ⓒ국립수목원(정수영)

구실잣밤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큰키나무입니다. 늘 푸르나 넓은 잎을 가진 나무여서 남쪽의 섬이나 제주에 가면 좋은 숲과 나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주사람들은 새끼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작지만 밤처럼 가시도 없으며 고소하고 달짝하기도 한 이 열매를 모아 두었다가 겨우내 먹었다고 합니다. 제주에서는 이 나무가 가로수로도 유명합니다. 먼나무 등과 더불어 자생하는 향토수종을 가로수로 심어 차별화된 가로수 정책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때 제주공항길을 비롯한 몇몇 명소는 하늘소유충 피해로 사라졌고 지금은 제주 월정사길이 구실잣밤나무가 아름드리 터널을 이루며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선정되기도 했으나 차선 확장 계획이 논의되어 걱정을 사는 모양입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 오랫동안 우리의 몸과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던 그 정겨운 나무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어려움이 참 많다 싶습니다. 수몰될 은행나무를 살리고자 들어 올린 안동 임계리 은행나무도 생각나고, 수백 년 된 돌 블록이 아직도 남아 있는 로마의 좁지만 유서 깊은 길들도 생각납니다. 기후변화 위기 앞에서 보다 섬세하고 진지하게 여러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갈 마음을 품어야 할 때인 듯합니다.


이유미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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