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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을 흔드는 유머, ‘있음’을 깨우는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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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6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11월 하순 발표합니다.
어떤 인생은 제 삶의 의미를 사물에 옮겨놓기도 한다. 지금은 빌리지의 화단이 된 오래전 하숙집 마당, 거기 서 있는 떡갈나무와 갖은 꽃들도 그런 사물들이다. 그것들이 부동산 개발로 망가지고, 그 소식을 전해야 하는 손녀 아세로라는 ‘경력 40년의 고정간첩’인 할머니에게 가장 충격적일 만한 거짓 뉴스를 대신 전하는 것으로 그 상실감을 희석시켜보려 한다. 병실에서 빵을 먹으며 “김일성이 죽었대(……) 기차 타고 가다 심장마비로.” 남은 빵을 모조리 입속에 욱여넣으며 “깅병일이랑 깅병은도 주었대(……) 배뚜산에서 밴마 타다가, 밴마가 무거워서 던져버렸나 봐.” 그래서, 이제 ‘할머니는 해방’되었다고 말한다.
김멜라의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는 독재시절 별안간 간첩으로 몰렸던 할머니 사귀자와 희소병으로 동생을 먼저 보낸 손녀 아세로라가 ‘없는 존재’가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사귀자는 가혹한 시절 속에 많은 것을 잃었지만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는 ‘빌리지의 화단’만은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귀자가 병치레로 자리를 비운 사이 포클레인이 화단을 파헤친다. 그렇다고 하여 사귀자의 소망이 허망하게 끝장난 것만은 아니다. 아세로라가 ‘해방’이라고 말한 이유도 그러하거니와 사귀자는 이제 가족과 이웃 곁에 ‘있는 존재’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김멜라의 특기인 발랄한 문체가 사건의 긴장을 내면의 슬픔으로 묘하게 돌려놓는데, 말 그대로 웃고 있는데 눈물이 흐르는 독서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그랬다. 카타르시스가 그런 것처럼 이런 종류의 ‘해소’와 ‘정화’는 우리를 자신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이제 슬픔은 지독한 현재에서 아득한 과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느낀 해방감은 좀 다른 것이었다. 즉 ‘할머니의 해방’은 예속과의 결별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아세로라와 더불어 이 소설의 독자들에게 그 예속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는 그 시절을 지나왔다. 그러나 그 시절은 우리를 지나가지 않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그 시절이 끝났다고 말하는 ‘우리’는 기실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말을 빼앗은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방된 우리’에게 그 시절은 끝없이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들의 부재가 돌아와 우리를 깨우고, 그 시절이 뚜벅뚜벅 걸어와 우리를 흔든다. 그것이 김멜라의 ‘하이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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