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뇌경색은 산재, 10년 뒤 좌뇌경색은 산재 아니라는 법원

입력
2023.11.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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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좌뇌, 2015년 우뇌 혈관 막혀 사망
1심 "뇌경색 후유증 영향 줘 사망" 원고 승
2심 "가장 유력한 원인 아니다" 원고 패소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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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당시 56세이던 A씨는 공사장에서 철야작업을 마치고 돌아와 잠을 자다가, 뇌경색(뇌혈관이 막혀 뇌 일부가 손상되는 것) 증상을 보였다. 우뇌 쪽 혈관이 막혔는데, 신체 좌측이 대부분 마비되는 등 뇌경색 후유증은 심각했다. 산업재해 보상을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은 "신경계통 기능 등에 뚜렷한 장해가 남아 수시로 간병을 받아야 한다"며 그의 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10년 뒤인 2015년 12월. A씨는 이번엔 좌뇌 쪽에서 뇌경색 증상을 보이며 쓰러진 뒤 사망했다. 유족은 "두 번째 뇌경색은 1차 뇌경색과 인과관계가 있어 산재로 봐야 한다"며 공단에 유족급여(업무상 이유로 사망했을 때 유족에게 지급되는 연금 형식의 산재 보험금) 및 장의비를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2018년 4월 신청을 거절했고, 유족은 소송을 내 법원 판단을 구했다.

1심 법원은 지난해 9월 "A씨 사망은 산재의 결과"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뇌경색 특성에 주목했다. "발생 부위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첫 번째 뇌경색이 두 번째 뇌경색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1심 판단이었다. 1심 재판부는 "뇌졸중(뇌경색+뇌출혈) 발병 이력은 그 자체로 뇌졸중의 주요한 위험인자"라는 법원 감정의사 등의 소견도 근거로 제시했다.

뇌경색의 후유증도 고려됐다. 1심은 "A씨가 첫 번째 뇌경색 이후 혼자 걸어다닐 수 없는 등 활동에 상당한 제한이 있었다"며 "이는 뇌경색 발생의 주요 위험 요인인 고혈압·당뇨 같은 기저 질환 관리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1차 뇌경색의 후유증과 2차 뇌경색으로 인한 전신마비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A씨가 사망했다는 게 1심 판단이었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 최수환)는 지난달 25일 원심을 깨고 "A씨의 사망을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1심 판단처럼 첫 번째 뇌경색 때문에 두 번째 뇌경색도 발병했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특히 두 번째 뇌경색이 기저 질환인 '혈관 협착'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을 근거로 내세웠다. A씨가 1·2차 뇌경색 사이 10년 동안 고혈압과 당뇨 같은 기저 질환을 치료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는 1차 뇌경색 이후 2009년 11월까지 음주와 흡연을 계속하다가 금주과 금연을 권고 받았고, 뇌경색 재발 방지를 위한 항혈소판제(혈전 형성을 막는 약물) 복용을 임의로 중단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발병 부위에도 주목해 "병명이 같을 뿐 발병 부위는 해부학적으로 서로 다르므로 관련성이 떨어진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뇌경색 자체가 발병의 주요 위험인자가 될 수 있거나 1차 뇌경색으로 기저 질환 관리에 어려움이 컸을 것이라는 사정만으로는, 1차 뇌경색을 2차 뇌경색의 유력한 발병 원인으로 보긴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A씨 유족은 상고했다.

결국 대법원 판단이 남은 상황. 노동법 전문 김남석 변호사는 "법원이 감정의사 의견과 다른 판단을 내린 경우가 있긴 하지만, 1차 뇌경색이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의견을 1·2심 감정의가 냈는데도 배척한 건 지나치게 엄격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임자운 변호사도 "사망 원인의 상대성(어떤 원인이 죽음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는가)을 과하게 따지는 건 업무 관련성에 대한 규범적 판단이 강조되는 산재보험 제도의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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