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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대립과 연대, 현대적 재해석으로 완성된 여성적 영웅의 오페라 '노르마'와 '투란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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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명작이라고 하지만 오페라 중에는 21세기 여성 관객이 감정 이입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다. 오페라 속 여성은 소외되거나 악하거나 희생되는 역할이 대부분이다. 시대적 슬픔의 반영이겠지만 같은 줄거리도 무용은 인물의 성격과 행동을 자유롭게 변형해 표현할 수 있는 반면 오페라는 인물의 생각을 전달하는 가사에 묶여 연출의 범위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무대에 오른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와 푸치니의 '투란도트'는 여성이 주인공인, 여성의 이름을 내건 작품들이다. 특히 여주인공들이 이뤄내는 연대와 대립의 구조는 전체 서사를 완성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한다. 벨칸토 오페라의 정수를 보여주는 '노르마'는 노르마(소프라노)와 아달지사(메조 소프라노)의 음악적 앙상블 구조가 빼어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서로 신의와 진심, 위로와 공감을 나누며 여성을 위한 여성의 희생을 그리면서 야나체크의 '예누파'만큼이나 성숙하고 무게감 있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투란도트'의 투란도트와 류는 대립구도의 각기 다른 캐릭터를 가진 두 소프라노가 목숨을 다해 자신의 이야기를 뜨겁게 열창한다. 반음계적 화성을 단계적으로 확장하며 힘 있게 카리스마를 뿜어 내는 투란도트는 영웅적인 여성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푸치니의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인 류는 서정미와 호소력 짙은 아리아로 극의 반전을 이끌어 낸다. 푸치니가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은 못마땅한 부분이 많지만 작품 속 여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부르는 노래와 오케스트라 전개는 눈물을 쏙 빼게 만든다.
감사하게도 두 오페라는 그간 무대를 보며 목말랐던 부분을 해갈해 줬다. 소프라노 여지원(노르마)은 어려운 기교와 섬세한 표현을 넘나들며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정한 '정결한 여신'의 성정을 품격 있게 노래했다. 오선지를 뚫을 듯 힘 있는 음색과 강렬한 연기, 미모까지 갖춘 투란도트를 노래한 소프라노 이윤정과 캐스팅 때부터 설렘을 갖게 한 서선영(류), 테너 이용훈(칼라프)의 조합은 실제 구현되었으면 하고 바랐던 가장 이상적이면서 최고의 무대를 완성했다. 노래뿐만 아니라 안정적이고 현실감 넘치는 연기는 이들이 왜 세계적인 성악가인지 확인시켜 주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연출이다.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의 2016년 연출을 재현한 '노르마'는 복식과 집 인테리어를 통해 '현재에도 있을 법한 이야기'로 관객들을 유도했지만, 노르마를 둘러싼 관계가 느슨해진 부분은 결말의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아달지사는 노르마를 배신한 적이 없는데 마지막에는 이들 연대가 끊어진 것처럼 존재감이 약해졌다. 군 통솔자로 분한 드루이드교의 제사장 오르베소는 노르마가 '아버지, 당신은 울고 있나요'(Padre, tu piangi)를 부르며 화형대로 향할 때 비로소 노르마와의 관계가 설명된다. 제정일치 사회의 원작 배경을 신권과 정권이 분리된 현대로 설정하면서 두 사람의 연결 고리가 낯설어진 것이다. 노르마가 스스로 죽기를 선택했을 때 가장 큰 반전을 겪어야 할 아달지사, 이 선택을 보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야 할 폴리오네 그리고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다소 갑작스럽게 등장한 오르베소의 부정(父情) 등은 노르마의 죽음이 갖는 슬픔과 무게감과 긴장감을 떨어뜨려 아쉬웠다.
오히려 손진책 연출의 '투란도트'는 지금까지의 결말이 갖고 있던 불편함을 해소했다. 푸치니는 3막의 류의 아리아 '얼음장 같은 공주님의 마음도'까지 쓰고 사망했다. 유작은 지휘자 토스카니니와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에 의해 마무리됐는데, 이들은 류의 죽음으로 환기된 군중과 칼라프 왕자의 적극적인 구애로 투란도트가 갑자기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해피엔딩을 만들었다. 손 연출은 투란도트가 사랑을 느끼게 된 부분까지는 살려 냈지만 변화된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 스스로 자결하는 결말을 선택했다.
이후 등장하는 투란도트의 아리아는 먼저 세상을 떠난 류와 함께 천상에 올라 노래하는 장면으로 매듭지었다. 작품마다 여주인공을 살려 두지 않는 푸치니를 생각할 때 손 연출의 해석은 훨씬 타당해 보인다. 투란도트는 모든 수수께끼를 풀고도 사랑을 이유로 다시 목숨을 내놓은 칼라프 왕자와의 싸움에서 더 이상 승부를 겨루고 싶지 않았다거나 지금까지 지켜 온 자신의 통치 방식이 무의미하고 잔혹했음을 깨닫고 각성했다는 내용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푸치니의 여성관에 입각해 완성하려 했다지만 현대 관객은 여성이 남자의 키스 한 번으로 '그의 이름은 사랑'이라고 외치게끔 마무리 짓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바람이 있다. 잿빛과 암흑의 통치 시기가 갑자기 핑크빛으로 바뀐다는 설정은 푸치니가 아니라 그 누구의 음악이라도 공감하거나 감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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