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독재정권 시절 국빈이 방문하거나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면 국민들이 나가 길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든 일이 있었다. 대부분 학교에서 수업을 폐하고 강제동원한 학생들이거나 동장이 동원한 동네 사람들, 가두변에 위치한 회사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래전 일을 떠올리게 하는 공공 행사가 요즘 벌어지고 있다. 정부 주도의 관급 행사에 신생기업(스타트업)들을 동원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에 도움 되고 좋은 일이면 동원돼도 별 말이 없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다만 시대가 달라진 만큼 방식도 변했다. 예전 우악스러운 방식 대신 스타트업이 정부와 계약한 사업 예산에 아예 행사 참가비를 포함시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어찌 보면 더 교묘하게 변한 셈이다. 정부에서 참가비를 대신 내주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할 수도 있지만 개발 등 꼭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돈을 엉뚱한 일에 쓰는 셈이니 문제다.
얼마 전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국제치안산업대전이 대표적인 경우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 행사는 미래 치안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연구, 생산 중인 치안 관련 제품과 기술이 한자리에 모인 행사다.
그런데 이 행사에 나온 스타트업들의 면면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치안과 무관한 건강관리(헬스케어)나 인공지능(AI) 업체들이 여럿 보인다. 이들은 공공기관과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행사 참가비가 사업 예산에 포함돼 무조건 나온 업체들이다.
그렇다면 홍보 효과라도 있어야 할 텐데 전시 기간 4일 동안 이 업체들의 전시 공간은 찾는 사람이 없어 한산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관람객이 경찰관이다 보니 업무와 상관없는 스타트업들의 사업 내용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접근성도 떨어졌다. 일반인이 오려면 교통이 편해야 할 텐데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면 행사장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마저도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배차 간격이 뜸하다. 그러니 홍보 효과가 전혀 없는 행사에 참여한 스타트업들로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 행사 참가비도 슬쩍 올라갔다. 스타트업들에 따르면 지난해 참가비가 500만 원이었는데 올해는 1,200만 원으로 올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시 공간 규모에 맞춰 행사 참가비를 받는 다른 행사와 달리 참가비가 4부스 규모로 고정됐다. 즉 1부스만 참가하고 싶어도 무조건 4부스 공간에 해당하는 참가비를 내야 한다. 다분히 불공정 계약 시비가 제기될 수 있다.
심지어 강제 동원식 행사 참가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사업 예산이 지급되는 기간 동안 행사에 매년 참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3년간 계약한 사업이면 3년 내내 이 행사에 참가해야 한다. 스타트업들은 민원이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지만 불이익을 받을까 봐 그러지 못한다며 애를 태웠다.
이처럼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정부 주도 공공 행사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모두 보여주기식 전시 행정에 치중한 탓이다. 정부 주도 행사라면 당연히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일일 텐데 참가자들도 불만이고 국민들도 이해하기 힘든 행사들에 대해서는 혈세가 엉뚱하게 쓰이지 않도록 방법과 효과 등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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