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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하라! 서울의 골목길 산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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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소설가 김호연은 "팔은 다쳐도 글은 쓸 수 있지만 다리를 다치면 글을 쓸 수 없다"라고 말한다. 두 발로 걷거나 산책하는 일이 글쓰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잘 표현한 말이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두뇌는 가만히 앉아 있을 때보다 적당히 움직일 때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한다. 그 '적당히 움직이기'에 가장 적합 활동은 산책이다. 차 없이 산 지 십 년도 넘은 나도 어지간히 산책을 좋아한다.
생각해 보면 첫 책을 쓰러 혼자 제주도로 내려갔을 때도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별장 근처에 있는 곶자왈로 산책을 나가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숲길을 걸으며 오늘은 무엇을 쓸지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뭔가 생각날 때마다 멈추어 서서 스마트폰이나 종이에 메모를 했다. 길에 앉아서 또는 서서 하는 삐뚤삐뚤한 메모는 집에 가서 제대로 된 문장으로 변했고 결국은 내 책이나 그날 일기의 원고가 되어 주었다. 매일매일의 산책은 글 쓰는 사람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서울에 와서도 산책은 이어졌다. 내가 사는 성북동은 길이 넓고 탁 트여서 걸어 다니기에 너무나 좋다. 사람뿐 아니라 개들도 목줄을 매고 주인과 함께 즐거운 표정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한성대입구역 쪽으로 내려가다 대학로로 빠지는 길도 좋다. 우리 집에서 대학로 입구까지는 걸어서 13분 정도 걸린다. 자동차가 없는 아내와 나는 무시로 걸어서 대학로에 있는 극장으로 연극을 보러 가고 친구들은 이런 우리를 부러워한다. 길을 걷다가 연극배우들과 마주쳐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동네가 그렇게 흔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혜화문을 지나 재능교육아트센터, 연우소극장, 혜화칼국수로 이어지는 큰 골목으로 들어서면 좀 심란해진다. 사람 옆에 바짝 붙어 질주하는 자동차들 때문이다. 이 길은 인도가 없어서 자동차가 지나가면 사람이 알아서 피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더구나 대로를 놔두고 골목길로 들어선 차의 운전자들은 대개 바쁜 상태다. 그런 사람들이 행인의 동선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움직일 리가 없다. 등 뒤에서 빵빵 경적을 울려대는 자동차를 피하다 보면 이 길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자동차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이 코너에 칼럼을 기고하시는 권기태 소설가도 인도 없는 시골길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들에 대해 쓴 적이 있지만 길의 사용권을 자동차에 내어준 건 시골만이 아니다. 어쩌다가 우리는 목숨을 내걸고 산책을 하는 지경이 이른 것일까.
교통사고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학식이나 재산, 정치적 성향 따위와도 전혀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불행이다. 세계적인 작가 스티븐 킹도 동네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큰일을 당할 뻔하지 않았던가. 다행히 지금은 회복되어 얼마 전 '빌리 써머스' 같은 멋진 소설을 펴냈지만 말이다. 어떻게 하면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까. 길을 일방통행으로 바꾸고 인도를 만들면 된다. 일본 교토의 은각사 옆의 '철학자의 길'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운 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생각에 잠겨 동네 산책길을 걷다가 차에 치여 응급실로 가고 싶지 않을 뿐이다. 교통 당국은 서울 골목길에서 행인들이 마음 놓고 산책할 권리를 허하시기 바란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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