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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 삽화까지 상세히" 외국인노동자 위한 '조선소훈민정음' 만든 교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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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6개월이 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특히, 조선소 안에서 쓰는 언어 때문에요.
이미선 서정대 교수
국내에서 대학 과정을 마치고 조선소에 투입된 외국인 졸업생 얘기를 들은 교수들의 고민은 이렇게 시작했다. 제조업 중에서도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유독 높은 조선업 현장이지만 꿈을 안고 이곳에 취업한 졸업생들의 초반 적응이 쉽지 않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들려오면서다. 현장 소음이 큰 와중에 빠르고 큰 목소리로 지시가 떨어지는데 이곳에서 처음 일하는 외국인들에게는 지시라기보다 욕설에 가까운 표현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조선업 현장에서 겪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런 고충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라지만 한국에서 2년 이상 교육을 받은 학생들마저 조선소 적응을 어려워한다는 점에 교수들은 주목했다. 언어 소통이 어려우면 차별 또한 더 심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직접 조선소를 찾아가 현장에서 쓰는 언어들을 살뜰히 배우고, 용접 및 도장 과정을 여러 달 지켜본 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맞춤형 교재 '용접 한국어'를 9월 출간했다. 서정대 특수목적한국어연구소 소장 손혜진 교수와 부소장 이미선 교수 얘기다.
먼저 프로젝트에 뛰어든 건 이 교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이 어려워진 당시 서정대에서 공부하다 조선소 취업으로 '직행'한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한 때다. 용접 한국어 출판을 위한 작업은 2021년 8월 첫발을 내디뎠고 이 교수는 다섯 명 남짓의 팀을 꾸려 그해 12월 차디찬 조선소 야드로 향했다. 이 교수는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우즈베키스탄과 네팔, 베트남 등에서 온 노동자들을 두루 인터뷰하며 이들이 조선소 생활을 처음 했을 때 겪었던 어려움들을 듣는 작업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진행 과정에서 뜻밖의 어려움도 많았다. 원고는 지난해 8월 마무리가 됐는데, 삽화 작업이 늦어지면서 꼬박 1년이 더 걸렸다고 한다. 손 교수는 "삽화 작가들도 조선소 용접 기술을 표현하는 게 처음이라 그리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검수하고 수정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쏟았다"며 "출판사에서도 많은 노력을 해 줘서 완성도 높은 교재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교수 역시 "유튜브를 아무리 찾아봐도 외국인을 위한 조선소 용접 용어 설명이 없었다"며 "같은 용접이더라도 조선소에서 필요로 하는 용어가 다르기 때문에 더 세심히 작업했다"고 했다.
수천만 원의 학교 예산과 2년 넘는 시간을 투입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조선소 훈민정음'에 대한 학교와 현장 반응은 뜨거웠다. 2학년이 된 외국인 학생들은 "1학년 때 이 책이 나왔으면 좋았겠다"며 아쉬워했고 책을 집필할 때 도움을 준 삼호중공업 등 조선소 관계자들 역시 "빨리 책을 보급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는 게 이들 설명이다. 손 교수는 "내년부터는 교육 과정에 이 책을 활용하고 실습 수업과 연결해 교육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조선소 내 도장 작업을 원활하게 만들 '도장 한국어', 자동차 산업으로 진출하는 외국인을 돕기 위한 '자동차 한국어'도 내놓을 계획이다. 여성 외국인들의 취업을 돕기 위한 '헤어(미용) 한국어'도 기획 중이다.
두 교수의 바람은 교재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빨리 적응하고 언어 능력에서 비롯된 차별이나 무시가 줄어드는 것이다. 손 교수는 "앞으로 이런 교재를 외국인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국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우리 노력으로 외국인들이 한국 산업 현장에서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과 희망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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