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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유치도 중요하지만, 청년이 정착할 매력부터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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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비수도권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청년에게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직접 물어보고,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미시적 근거를 찾아 매달 첫 번째 수요일에 비수도권 지역을 한 곳씩 분석해 게재한다.
전북 익산시는 수도권과 호남을 연결하는 관문 도시다. 양 지역을 오가는 철도와 고속도로가 모두 이곳에 모였다 흩어진다. KTX를 이용하면 서울 용산역에서 1시간 20분 거리다. 이런 지리적 이점이 익산 최고의 경쟁력이자, 발전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교통은 외지 사람을 불러들이지만, 동시에 주민이 이탈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익산도 대부분 비수도권 도시와 마찬가지로 소멸의 경로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2000년 30만이 넘던 인구는 계속 추락해 현재 27만 명이다. 이유 역시 다른 비수도권 도시와 다르지 않다. 출생 건수가 2013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16년부터 출생 건수가 사망 건수보다 낮아졌다. 태어나는 아이가 이렇게 빨리 감소한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덜 낳는 것을 넘어 결혼할 젊은이가 익산을 떠나고 있다는 신호다. 그즈음에 어떤 요소가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2015년 4월 KTX가 개통됐다. 또 그해부터 익산의 혼인 건수 감소 폭이 커지기 시작했다.
편리해진 교통망은 긍정적 효과도 있다. 2013년부터 10여 곳의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이 전주 인근 전북혁신도시로 이주한 이후 익산도 수도권 공공기관 유치를 익산 재생의 중요한 계기로 삼으려 한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2023년까지 300곳 이상의 수도권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 공약을 제시한 것을 계기로 적극적인 유치 노력을 벌였으나, 연기돼 실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익산은 전북의 제2 혁신도시 대상지로 선정되는 등 공공기관 유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수도권 공공기관 유치가 익산의 청년 실종을 막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또 그런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지금부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점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연구 대상은 이미 익산에 이주한 공공기관 직원들이 얼마나 익산에 잘 뿌리내리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2017년 수원에서 익산으로 이전한 한국농업기술진흥원(이하 농진원)이 바로 그런 곳이다. 농진원 이전에 따라 익산으로 거처를 옮긴 젊은 직원들로부터 익산 생활에 대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6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뿌리를 옮긴 몸살이 다 낫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이전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들도 나타나고 있었다.
수도권에 이미 생활 터전을 자리 잡은 고참 직원들은 여전히 수도권에서 출퇴근을 하거나 주말부부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전 후 취업한 젊은 층들은 대부분 익산에 살 집을 마련한다. 무엇보다 인근 도시보다는 싸지 않지만, 수도권과 비교해서는 훨씬 낮은 주거비가 장점이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지역 사회와의 교류 기회는 드문 편이다. 이전한 지 6년이 지나도록 농진원은 익산 내 외딴섬으로 존재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익산 내에서 교류할 또래 집단을 찾기 힘든 데 있다. 서로 간의 서먹함이 일차적 이유지만, 도심 번화가를 가 봐도 또래를 마주치는 경우가 드물다. 대중교통이 부족한 것도 외출보다는 직장 내에 머물거나 집에 있는 경우가 늘어나는 이유다. 전북도와 익산시는 수도권 공공기관 추가 유치에만 매달릴 뿐 이미 이전한 기관이 온전히 익산에 뿌리내리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익산시가 수도권 공공기관을 추가로 유치할 준비가 얼마나 잘 돼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익산(27만 명)과 인구가 비슷한 경기 광명시(28만 명) 군포시(26만 명)와 안심영역과 만족영역 지수를 비교했다.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ISDS)가 여러 통계자료 및 기사와 댓글,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주민들의 이야기와 국민민원데이터 등 다각적인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안심영역은 기본적인 삶의 영위에서 꼭 필요한 조건으로 일자리, 안전, 자연환경, 의료 분야가 포함된다. 우선 생활안전과 범죄지수로 구성된 안전지수에서 서울 광명 군포보다 높았다. 특히 생활시설 공사장 식품 보건 시설 등의 안전점검 평가가 2년 연속 전북 최우수를 기록했다. 일자리는 서울을 1로 했을 때 익산이 0.61로 군포(0.64)에 비해 뒤졌으나 광명(0.52)보다는 앞선 상황이다. 특히 익산의 사업체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제조업체 고용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하림푸드와 하림산업 등 향토 업체가 주축이 된 국가식품클러스터 1단계 조성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곧 2단계 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될 예정이다. 환경과 의료 지수는 광명·군포와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일상생활과 긴밀한 요소들을 측정하는 만족영역에서는 접근 편의성 측면에서 광명·군포에 뒤처진다. 공공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문화센터 등 문화 기반 시설의 경우는 인구 대비 여유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대규모 점포와 영화관, 커피숍 등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공간은 면적·인구 대비 모든 면에서 광명·군포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이는 익산으로 이주한 공공기관 청년 직원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청년들의 불만은 이주 청년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학 이상을 졸업한 익산 출신 청년들은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한다. 이는 전국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익산 젊은이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2022년 익산시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직활동에 나선 젊은이들의 불만 중 ‘희망 직종과 고용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응답이 전북 전체에서 40.8%였던 반면 익산은 44.3%로 더 높았다. 풍부한 농업 기반을 바탕으로 식품산업을 특화하려는 익산시의 산업 전략의 방향은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떠나가는 젊은이들을 붙잡으려면 보다 다양한 일자리를 조성하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익산의 성비(2022년 기준)를 살펴보면 전체 연령에서는 여성 기준 남성 비율이 0.99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20·30 청년층에서는 1.15로 ‘남초’(男超)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특히 20대 초반은 1.17, 20대 후반은 1.21로 성비 균형이 무너진 상황이다. 이는 국내 대부분 제조업 도시의 공통 현상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청년 여성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다른 도시로 떠나면, 결국 청년 남성들도 따라 떠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익산시의 20·30대 청년층 인구는 감소하고 있고, 2014년 이후에는 40·50대 인구마저 줄어들고 있다.
익산이 ‘관문 도시’의 이점을 살려 청년 도시로 거듭나려면, 혁신도시를 조성해 공공기관 등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이주한 청년들이 섬처럼 고립되지 않고 지역 사회에 뿌리내리고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익산 출신 청년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보다 고향에 정착하기를 원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도 시급하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포스텍 배영 교수는 “익산의 경우 혁신도시 유치로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지역 인구 증가에 분명히 긍정적 요인이다. 다만 지역 활성화에 있어 새로운 인구 유입은 일차 과제이지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점에서, 지역 청년들의 일상적 삶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애로의 파악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료 정리: 박세윤, 전솔영(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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