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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과 역사 서린 고택... 정겨운 마을에서 하룻밤 묵어 갈까

입력
2023.10.31 17: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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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추천 이야기가 있는 고택

60여 채의 한옥이 밀집한 함양 개평한옥마을 중심에 조선 성리학의 대가 정여창의 집인 일두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최흥수 기자

60여 채의 한옥이 밀집한 함양 개평한옥마을 중심에 조선 성리학의 대가 정여창의 집인 일두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최흥수 기자

한국관광공사가 11월 추천 여행지로 ‘이야기가 있는 고택’을 꼽았다. 선비의 기품이 서린 집에서 하룻밤 머물러도 좋고 정겨운 마을길을 거닐며 사색을 즐겨도 그만인 곳이다.

대학자의 기품 서린 함양 일두고택과 개평한옥마을

경남 함양 일두고택은 조선 성종 때 문신이자 학자인 일두 정여창(1450~1504)의 집이다. 경사(經史)에 통달한 성리학의 대가이자 동방오현으로 추앙받는 유학자이지만 무오사화에 연루돼 귀양지인 함경도 종성에서 사망했다. 지금 남은 고택은 정여창이 세상을 뜨고 약 1세기가 지나 건축했다.

함양 개평한옥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일두고택. 최흥수 기자

함양 개평한옥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일두고택. 최흥수 기자


함양 개평한옥마을 인근의 남계서원. 최흥수 기자

함양 개평한옥마을 인근의 남계서원. 최흥수 기자

솟을대문에 정여창 가문이 나라에서 받은 정려 5개가 있다. 사랑채에는 집안의 권세를 말해주듯 문헌세가(文獻世家) 편액이 걸렸고, 방문 위에는 커다랗게 충효절의(忠孝節義)라 쓰여 있다. 누마루 모서리에는 탁청재(濯淸齋) 편액이 걸렸다. ‘탁한 마음을 깨끗이 씻는 집’이란 뜻이다. 마당에 조성한 소박한 돌무더기 정원인 석가산(石假山)이 그윽하게 내려다보인다. 사랑채 옆으로 난 일각문을 지나면 안채로 연결되고, 곡간과 정여창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차례로 나온다.

일두고택이 위치한 곳은 개평한옥마을이다. 지은 지 100년이 넘는 크고 작은 한옥 60여 채가 모여 있어 돌담 골목마다 오래된 마을의 그윽한 향기가 배어 있다. 가까운 거리에 남계서원이 있다. 지역 선비들이 정여창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라 있다. 주변에 일로당과 남계한옥스테이, 우명리 정씨고가 등 한옥 숙소가 여럿 있다.

지리산처럼 품이 너른 집, 구례 운조루

구례 운조루(雲鳥樓)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이다. 조선 영조 52년(1776) 류이주가 낙안군수를 지낼 때 지은 집으로, 지리산 품처럼 너그럽고 푸근한 고택이다. 250년 가까이 잘 보존된 외관을 보면 관리에 쏟은 정성이 엿보인다. 고택에 스민 정신도 못지않다. 류씨 집안은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새긴 뒤주에 쌀을 채워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이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게 인심을 베풀었다.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 구례 운조루 고택. 한국관광공사 제공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 구례 운조루 고택. 한국관광공사 제공


운조루 사랑채 누마루에서 류이주의 10대손 정수씨가 차를 내리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운조루 사랑채 누마루에서 류이주의 10대손 정수씨가 차를 내리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 사당, 연지로 구성된 고택은 규모가 제법 크지만, 화려한 장식 없이 소박하다. 부드러운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랑채 누마루는 운조루의 백미로, 문인들이 풍류를 즐긴 곳이다. 수분실(隨分室)이라는 현판을 걸어 절제 있는 삶을 지향하고 굴뚝을 낮게 만들어 이웃을 배려했다. 현재 4개 방과 너른 마당을 한옥민박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더 예쁜 논산 명재고택

논산 명재고택은 벼슬을 사양하고 평생 학문 연구와 후대 교육에 전념한 조선 숙종 때의 대학자 명재 윤증(1629~1714) 집이다. 고택은 안채와 광채(곳간채),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된다. 보존 상태가 양호해 조선 양반 주택의 가치와 실용성이 돋보이는 한옥으로 꼽힌다.

논산 명재고택의 그윽한 가을 풍경. 명재고택 제공

논산 명재고택의 그윽한 가을 풍경. 명재고택 제공

미닫이와 여닫이 기능을 합친 창문(안고지기)을 활용한 사랑채, 일조량과 바람의 이동을 고려한 안채와 광채 배치 등은 과학적 원리를 적용한 지혜가 돋보인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 뒤에 내외 벽을 설치하고 벽 아래 틈을 둬 안주인이 방문객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인공 연못, 장독대, 고목 등이 운치를 더한다. 후손이 거주하고 있어 지정된 장소 외에는 출입을 금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하며 관람료는 없다.

논산에서 함께 둘러볼 곳을 꼽는다면 돈암서원이다. 조선 중기 정치가이자 사상가 김장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현종 때 사액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아홉 서원 중 하나다.

인천 근현대사 중심지, 인천시민애(愛)집

인천시민애(愛)집은 자유공원 남쪽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사업가가 저택을 지어 살던 곳을 인천시가 매입해 한옥 형태 건축물을 올리고 시장 관사로 활용했다. 시청이 이전한 후에 인천역사자료관으로 쓰이다가, 2021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했다. 시민애집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뉜다. ‘1883모던하우스’는 과거 시장 관사를 개조한 근대식 한옥이다. ‘제물포정원’이 주변을 감싸고 있고, 경비동은 인천항과 개항로 주변을 조망하는 ‘역사전망대’이자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인천시민애집 '1883모던하우스'의 사랑채 쉼터. 한국관광공사 제공

인천시민애집 '1883모던하우스'의 사랑채 쉼터. 한국관광공사 제공

주변에 1883년 제물포항 개항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서양인의 사교 모임 장소였던 구 제물포구락부 건물이 대표적이다. 대불호텔전시관에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인천일본제1은행 지점이었던 인천개항장박물관, 일본제18은행을 개조한 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도 인근에 있다.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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