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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시위 때도 '장쩌민 추도' 하더니... 시진핑, 리커창 장례 일정도 안 정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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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의 '리커창 흔적 지우기'가 예사롭지 않다. 약 1년 전쯤 장쩌민 전 국가주석 별세 당시 대대적인 추모 분위기를 조성했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지난 27일 숨진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에 대해선 시민들의 추모 분위기를 나흘째인 30일까지도 억누르려는 분위기만 감지되고 있다. 원로 지도자였던 장 전 주석과는 달리, 젊은 세대에도 익숙한 리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자칫 '반(反)시진핑' 정서를 자극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 탓으로 분석된다.
30일 인민일보와 환구시보 등 중국 관영 언론들은 리 전 총리의 별세 소식과 관련한 후속 보도를 내지 않았다. 생전 그의 업적을 조망한 기사는커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주변국 지도자들의 애도 표명 사실도 일절 전하지 않았다.
심지어 구체적인 장례 일정조차 발표되지 않고 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장례 형식과 규모, 장소 등을 두고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기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이미 정해졌지만 미리 공개하진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불과 7개월 전 퇴임한 '정부 2인자'의 별세라 하기엔 대단히 이례적일 만큼, 사실상 정부가 리 전 총리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지난해 11월 30일 장 전 주석 별세 때와 비교해 매우 상반된다. 당시 중국 정부는 먼저 나서서 추도 분위기를 띄웠다. 사망 이튿날 공식 장례 일정을 공개했고, 추도 대회 당일에는 '3분간 묵념' '3분간 경적' 등을 지시했다. 추도 대회는 전국에 생중계돼 사실상 모든 중국인이 이를 시청해야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추도사에서 "장쩌민 동지가 그리운 것은 그가 국가 부강, 인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했기 때문"이라고 칭송했다. 중국 정부의 제로코로나 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백지 시위' 직후였던 탓에, "장 전 주석 사망이 또 다른 반정부 시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 서방 언론 예측과는 반대로 '후한 장례식'을 치러 준 셈이었다.
리 전 총리와 장 전 주석은 각각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과 상하이방의 대표주자였다. 태자당 출신의 시 주석과는 정치적 계보를 달리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개혁·개방 정책을 토대로 하는 '경제 활력'을 중시했다는 점에서도 '분배'를 중시하는 시 주석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두 사람의 사망을 접한 '시진핑 정권'의 상반된 반응을 둘러싸고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가장 큰 이유는 장 전 주석에 비해 리 전 총리가 시 주석에게 훨씬 더 위협적 인물이었다는 데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90년대 중국을 이끈 장 전 주석은 지난해 사망 당시 은퇴한 지 20년가량 흐른 원로 정치인이었다. 2013년 집권한 시 주석과 직접 대립할 일도 없었다.
반면 리 전 총리는 '시진핑 1·2기' 체제에서 총리로 재임하며 시 주석의 정책 노선에 비판적 시각을 자주 드러냈다. 2007년까지 시 주석과 차기 최고지도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인 최대 라이벌이란 점도 젊은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사실이다. 리 전 총리 추모 열기가 커질수록 시 주석에 대한 반감도 커지는 구조라는 얘기다.
'후야오방 트라우마'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개혁 성향 정치인이었던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는 1989년 4월 급사했고, 이는 같은 해 6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후야오방과 리 전 총리 모두 1인자와 갈등을 겪었고,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했으며, 젊은이들의 애도 분위기가 형성된 점 등에서 흡사하다. 영국 BBC방송은 "후야오방의 죽음이 정치적 대격변으로 이어진 역사를 고려하면, 리커창의 사망은 시 주석에겐 위험 요소"라고 짚었다. 리 전 총리 추도 열기가 자칫 '제2의 톈안먼' 사태를 촉발할 가능성을 중국 정부가 경계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중국 온라인에선 광저우 지역 일간 남방도시보가 게재한 사진이 주목을 끌었다. 1면에 "리커창 동지 서거"라는 제목 아래 거대한 고목나무 사진을 실었는데, 6·4 톈안먼 시위 당시 후 전 총서기를 추모하는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아주 큰 나무'라는 노래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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