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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중 아이들 비율, 가자는 40%, 우크라는 5%... 왜 이렇게 다른가

입력
2023.10.30 19: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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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희생자의 40%... 실종도 1000명
분쟁지역 20여 곳 연간 사망자 추월
인구 절반 18세 미만, '요람 전쟁'의 비극
생존 아동 트라우마도 극심 "애착 문제"

지난 23일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에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어린이들이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한 병원 마당에 앉아 울고 있다. 라파=AFP 연합뉴스

지난 23일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에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어린이들이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한 병원 마당에 앉아 울고 있다. 라파=AFP 연합뉴스

천으로 감싼 작은 시신이 나올 때마다 통곡이 더 커진다. 3,200명의 어린 목숨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생지옥을 견디다 숨졌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이 본격화한 지 불과 3주 만이다. 가자지구 사망자 10명 중 4명이 아이들이다. 이스라엘의 지상전 개시로 추가 희생도 불가피해졌다.

러시아와 1년 8개월째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아이들 사망자(약 550명)가 전체 민간인 사망자의 약 5.6%인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가자에선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었을까.

3주간 숨진 가자 어린이 3200명

29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과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지난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된 후 사망한 가자지구 영·유아와 어린이는 3,200명에 달한다. 가자지구 전체 희생자의 무려 40%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최근 3년 동안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발생한 연간 어린이 희생자 수보다도 많은 숫자"라고 지적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해 분쟁이 발생했던 24개국에서 사망한 어린이는 2,985명이었다.

부상당한 어린이도 6,300명이 넘는다. 하지만 가자지구 병원 가운데 3분의 1은 연료와 의료품 공급이 끊겨 사실상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연이은 포격에 무너진 건물에 깔렸거나 피란 중 보호자의 손을 놓친 어린이 실종자는 1,000여 명. 사상자가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제이슨 리 세이브더칠드런 가자지구 지부장은 "3주간 지속된 폭력은 아이들의 삶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찢어 놨다"며 "국제사회가 논쟁만 벌이는 사이 아이들은 사지에 방치됐다"고 비판했다.

왜 이렇게 아이들만 많이 죽나

병원, 학교, 주택, 대피시설 등을 가리지 않은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이 아동 대량 학살로 이어졌다. 가자 아이들의 유난히 큰 희생은 이 지역의 인구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 당국에 따르면 가자지구 인구(약 220만 명) 가운데 절반(47.3%)가량이 '18세 미만'이다. 높은 출생률이 그 배경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추정한 올해 기준 가자지구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3.38명이다. 이스라엘도 2.9명대로 3명에 가깝다.

인구를 국가 생존의 문제로 보는 양국은 '인구 경쟁'을 벌여왔다.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출산을 장려했다.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을 이끌었던 야세르 아라파트(2004년 사망)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인구 증가야말로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이른바 '요람 전쟁(War of cradles)'으로 불리는 인구 늘리기를 강조했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과의 오랜 분쟁과 하마스의 영향력이 가자 출산율을 끌어올렸다"며 "특히 하마스는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해 가자지구를 장악한 후 높은 출생률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짚었다.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이 그 국가와 민족을 지우려는 전쟁에 대거 희생된 셈이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계속되는 가운데 29일 가자지구 칸 유니스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아들의 시신을 든 채 슬퍼하고 있다. 칸 유니스=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계속되는 가운데 29일 가자지구 칸 유니스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아들의 시신을 든 채 슬퍼하고 있다. 칸 유니스=AFP 연합뉴스


살아남아도 극심한 트라우마

가까스로 목숨을 지킨 아이들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수십 년간 가자지구를 둘러싼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심리 상태는 이미 위험한 수준이다. 부모에게 유달리 매달리는 등의 애착 관련 문제 행동을 보이거나, 야뇨증, 악몽, 식사 거부 등 증상도 다양하다. 지난해 가자지구 어린이 5명 중 3명이 자해를 경험했다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연구 결과도 있다.

아랍권 매체 아랍뉴스는 "분쟁 지역의 어린이들은 신체적 부상을 넘어 더 오래 지속되는 정서적 고통과 싸워야 한다"고 전했다. 제이다 알 하킴 영국 런던 시티대 상담 심리학자는 "폭탄 테러와 미사일 공격, 가족의 상실을 목격한 어린이의 심리적 불안은 그 자체로 악화하거나, 공황 발작, 두통, 복통 등 또 다른 신체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이 매체에 말했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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