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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있어야 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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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유족들은 애원했다. "살려달라"고 "만나달라"고 읍소했다.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라고도 호소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쳤다. 90여 명의 유족들이 줄지어 서서 울부짖는 장면은 모른 척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경찰과 경호원들이 '인간 벽'을 치고 가렸다고 해도, 다 보였고, 다 들렸다. 그럼에도 단 한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건 의도된 외면으로 비쳤다. 생때같은 자식을 차가운 바닷속으로 떠나보낸 유족들 가슴에는 그렇게 또 한번 대못이 박혔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 달,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렸다. 책임을 통감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유족들의 생각은 달랐다.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2014년 10월 29일, 본청 계단에서 유족과 모질게 거리를 둔 대통령에게 국민은 어떤 존재였을까.
후회는 9년 만에, 너무 늦게 도착했다. 탄핵이라는 국민의 심판을 받고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은 최근 중앙일보와 진행한 회고록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유족들을 자주 찾아가 위로하고 지속적으로 상처를 어루만지고 마음을 달래야 했는데, 그런 조치가 미흡했다." 마음의 짐으로 남은 외면의 순간들은 세월호 유족과 국민에겐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박제됐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 애도와 추모는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의 씨앗이 됐다. 그사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작업은 표류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했던가. 여기, 또 다른 유족들이 대통령을 애타게 찾고 있다. 2023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유족들이 마련한 추모행사에 윤석열 대통령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야당이 공동주최하는 "정치 집회"라는 게 대통령실이 밝힌 최초 불참 사유였다. 윤 대통령은 대신 서울의 한 교회 추도예배에 참석해 "작년 오늘은 가장 슬픈 날"이었다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 위로와 책임의 메시지를 유족들을 마주하며 직접 건넬 수는 없었을까. 윤 대통령이 수차례 사과의 뜻을 밝혔다고 하지만, 유족들은 선뜻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진상규명은 더디고, 참사 책임자들은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사과는 공허하고, 반성은 기만으로 느껴질 법하다. '나도 언제든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재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국민들의 불안도 가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얘기가 세월호 때처럼 또 들려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반성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잊어버리고, 방심하는 사이 참사의 비극은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거다. 우리 스스로 느슨해지지 않도록. 그 약속과 다짐을 윤 대통령이 유족들 앞에서 제대로 해줬으면 한다. 회복은 슬픔을 온전히 보듬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정쟁이 끼어들 빌미를 만들지 않는 것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몫이다.
그날 밤 살릴 수 있었던 159명을 죽음으로 기어이 몰아넣은 건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이었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안전 시스템이 마비된 총체적 실패였다. "사람 다 죽게 생겼다", "빨리 와서 살려달라"는 다급한 외침에도 제때 도착하지 못한 국가의 응답이, 이번에는 너무 늦지 않게 건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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