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손·발 떼니 마음이 떨리더라...그런데 차는 시속 100km로 달리네

입력
2023.10.31 12: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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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의 심장부서 공개된 안전·자율주행기술
레벨3 레전드, 손·발 떼고 시속 100㎞ 달려
日서 인증받고 100대 한정 리스로 상용화

28일(현지시간) 일본 도치기현 소재 혼다 R&D센터 오벌서킷에서 기자가 시속 90㎞로 달리다 핸들에서 두 손을 떼고 자율주행을 체험하고 있는 모습을 동승자가 촬영했다.

28일(현지시간) 일본 도치기현 소재 혼다 R&D센터 오벌서킷에서 기자가 시속 90㎞로 달리다 핸들에서 두 손을 떼고 자율주행을 체험하고 있는 모습을 동승자가 촬영했다.


28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서 북쪽으로 약 130㎞ 떨어진 도치기현 우츠노미야시 혼다의 연구·개발(R&D) 센터 역할을 하는 재팬 프루빙그라운드에서 안전강화차량(ESV)을 만났다. 판매 차량에 적용되기도 전 한국에서 온 언론에 공개한 건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이 기술이 쓰인 '박스카' N박스 뒷좌석에 타봤다.

운전자는 곧 핸들을 잡고 시속 20㎞로 차를 몰았다. 우회전하려는데 반대편에서 오토바이가 직진 방향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위험을 알아차리고 1초쯤 지났을까. 끽 소리와 함께 몸이 앞으로 쏠렸다. 급정거한 덕분에 충돌을 피했다. 놀라운 건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올리지 않았다는 것. 1.3초 안에 위험을 감지한 센서가 알아서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아준 덕분이다.

구리타 지로 첨단안전제품개발부문 총괄엔지니어는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도 제동이 걸린 상황을 만든 것"이라며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기능을 알렸다. 보통 운전자가 당황해서 두 페달을 동시에 밟으면 속도가 올라가고 사고가 나기도 하는데 혼다는 이 경우 브레이크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잠시 후 또 다른 위험 상황이 연출됐다. 2차로 도로 위로 박스카 두 대가 같은 차로 앞뒤로 나란히 움직이고 있다. 운전자는 시속 30㎞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앞 차량이 갑자기 차로를 바꾸자 정차 중인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즉시 제동이 걸렸다. 사람이 위험을 알고 속도를 줄이는 반응 속도보다 더 빨라 사고를 피했다.



레벨3 레전드, 손·발 떼고 시속 100㎞로 달린다

자율주행 3단계(레벨3)가 적용된 혼다 레전드가 28일(현지시간) 서킷을 달리고 있다. 혼다코리아 제공

자율주행 3단계(레벨3)가 적용된 혼다 레전드가 28일(현지시간) 서킷을 달리고 있다. 혼다코리아 제공


바로 옆 트랙에서 자율주행 3단계(레벨3) 차량 레전드를 직접 몰아봤다. 시속 90㎞로 달리는데 조수석에 앉은 인스트럭터가 "두 손을 떼보라"고 했다. 차량 스피커에서 차근차근 안내해주는 음성이 나왔다. 양옆을 지나는 차가 없는지 감지하더니 핸들에 하늘색 불을 켜고 "자율주행해도 좋다"고 했다. 핸들 위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위치에 자율주행 버튼이 있다. 이걸 누르고 속도 레버를 위로 밀어 100㎞로 맞췄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다. 차는 양쪽 차로에 걸치지 않고 달렸다. 코너도 깔끔하게 돌았다. 인스트럭터는 센터패시아를 눌러 엔터테인먼트를 켜더니 영화를 보거나 쉬라고 했다. 운전석에 앉아 앞쪽을 보는 대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니.

물론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1, 3차로의 뒤쪽에서 차량 한 대씩 속도를 높이며 다가왔다. 그러자 핸들 위 조명은 녹색으로 바뀌었고 계기판에는 두 손을 편 아이콘이 나타났다. 다시 운전대를 잡으라는 신호다. 핸들을 잡고 주의를 기울인 지 1분도 안 돼 양쪽 차량이 사라졌다. "삐빅" 소리가 났다. 다시 손을 놓아도 좋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차로 변경을 시도했다. 손을 떼고 엄지손가락으로 오토레인체인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흔들림 없이 차선을 바꾼 뒤 속도를 내 앞차를 따돌렸다.

혼다의 레벨3 기술이 쓰인 레전드는 일본에선 이미 100대가 출시됐다. 국내에서도 레벨3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한 차량이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한계 속도는 80~90㎞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무카이 요시노부 총괄 엔지니어는 "(우리는) 시속 130㎞까지 달릴 수 있다"고 자랑했다.



단단히 벼른 혼다…5조 엔은 적다? R&D 비용 계속 증가

혼다 R&D센터 연구원이 새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혼다코리아 제공

혼다 R&D센터 연구원이 새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혼다코리아 제공


그동안 전동화가 더디다는 평가를 받아온 혼다는 이날 단단히 벼른 듯했다. 당장 이 시설은 언론에는 거의 공개하지 않는 장소다. 단순히 내부를 보여줬을 뿐 아니라 연구원들이 직접 기술을 설명하며 질문을 받았고 기자들에게 체험도 하게 했다. 이날은 한국과 태국 취재진 50여 명이 방문했고 이튿날은 인도 등에서 온다고 했다.



혼다 임원들이 27일(현지시간) 도쿄 혼다 본사에서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박지연 기자

혼다 임원들이 27일(현지시간) 도쿄 혼다 본사에서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도쿄=박지연 기자


혼다는 앞으로 6년 동안 설사 수익을 내지 못해도 R&D 부문에 5조 엔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27일 도쿄 혼다 본사에서 만난 아오야마 신지 혼다 대표이사·부사장(COO)은 투자 규모를 묻는 질문을 듣더니 한바탕 웃었다. 그는 "5조 엔은 배터리 전기차에 한정한 금액"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형태로 투자와 출자, 인수합병(M&A)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배터리 분야에선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공장(JV)을 2025년부터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가동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츠노미야=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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