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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서 취업한 '수도권 출신' 구성작가 "대학졸업 후 3년 안에 청년 붙들어야"

입력
2023.10.30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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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주 '인포커스' 작가 박신우씨
영상제작 작가 "졸업 동기들 전부 수도권"
월급 160만원 지원 '일자리 사업' 덕 정착
"소통·공감 가능 지역 청년 커뮤니티 필요"

전북 전주시 소재 영상 제작업체 '인포커스' 작가로 일하고 있는 박신우씨. 그가 영상 제작 사업 수주를 위해 꾸린 기획안을 직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전주=정민승 기자

전북 전주시 소재 영상 제작업체 '인포커스' 작가로 일하고 있는 박신우씨. 그가 영상 제작 사업 수주를 위해 꾸린 기획안을 직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전주=정민승 기자

“넌 서울로 안 와? 부모님도 서울에 계신다면서 왜?”

경기 남양주 출신으로 전북 완주군에 있는 우석대(문예창작과)를 2020년 졸업한 박신우(31)씨. 지금은 전주시의 한 영상 제작 업체에서 작가로 일하는 그는 친구들한테서 심심찮게 이런 이야길 듣는다. “부모님 가깝고, 훨씬 좋은 직장이 서울에 더 많은데 왜 전주에 사느냐”는 것이다.

박씨는 반박한다. ‘출퇴근에 쓰는 시간은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고, 대중교통도 다른 사람 땀 냄새 맡지 않고 이용할 수 있으며, 연중 뮤지컬 공연까지 이어지는 문화 도시에 주거비 등 생활비까지 저렴한 이곳이 뭐가 어때서 서울로 가?’ 정도로 그의 생각은 압축된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전주와 연을 맺은 그는 일찌감치 ‘자연 좋고 사람 좋은 전주에서 살어리랏다’를 다짐했던 터. 물론 ‘전주에서 취업한다면’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동기 32명 중 전주 취업 저뿐"

박씨는 각종 문학 공모전에서 입상한 나름 ‘문학청년’이었지만 ‘전주 취업’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긴 쉽지 않았다. 방송국, 신문사, 출판사 등에 도전했지만 잘 안 돼 편의점, PC방, 건설현장 일용직, 생활용품점, 택배 상하차, 숙박업소, 서빙, 대형마트 보안요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24일 본보와 만난 박씨는 “지쳐서 서울로 올라가려던 찰나 지금 회사에 취업했다”고 말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졸업을 하고도 원하는 일자리를 바로 구할 수 없었던 대학 동기들은 하나둘씩 서울 등 수도권으로 떠났다. 졸업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동기 32명 중 전주에 취업한 이는 박씨 말고는 없다. “인구 65만의 전북 대표 도시 전주가 이럴진대, 다른 중소 도시는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어요?”

박씨가 다니는 회사는 직원 13명, 연 매출 10억~15억 원 규모의 영상 제작 업체다. 도청과 시청, 지방공기업, 사회단체 등 각종 기관이 필요로 하는 영상 제작 사업을 수주해 공급한다. 박씨는 구성 작가지만, 입찰 서류 작성을 비롯해 잠재적 고객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까지 도맡아 한다. 그는 “규모 있는 회사에선 이 업무들이 세세하게 분장됐겠지만 다양하게 하고 있다”며 “최근엔 영상촬영도 어깨너머로 배우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방대 졸업 – 원하는 취업 실패 – 다양한 일용직 – 정규직 취업’으로 요약되는 경험을 한 박씨는 청년들이 왜 고향을 떠나고, 이후 고향으로 돌아오기 힘든지 그 이유를 파악했다. 대학 졸업 후 시작하는 ‘사회적 관계 구축기 3년’이 핵심이라는 결론이다. “이 시기를 어디서 보내느냐에 따라 그들의 향후 거주지가 결정돼요. 서울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면 대개 비슷한 지역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짝을 만나 수도권에 자리를 잡는 식이죠.”

경력을 쌓은 뒤 나중에 지역 기업으로 돌아와 취업할 수는 있지만, 그동안 형성된 해당 지역에서의 사회적 관계 때문에 3년 이후 ‘이동’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서울로 떠난 청년이 마음이나 몸에 병을 얻기 전까지는 고향에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는 냉정한 진단이다.

"지역 청년 모일 수 있어야"

결국 사회적 관계 구축기 3년 안에 청년을 붙드는 게 핵심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앙 정부와 각 지자체가 협업하는 ‘지역주도 청년일자리 사업’이 주목받는다. 청년을 채용하는 지역 기업에 인건비(월 160만 원)를 2년간 보조하는 제도다. 지역 청년을 취업시켜 정착을 유도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그 청년을 통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지역소멸 극복 지원 사업이다. 박씨 역시 지금의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로 이 정책을 꼽는다. 박씨 회사의 김지운 대표는 “회사 입장에선 고용 유지가 제일 중요하고, 그걸 위해선 직원이 2, 3개월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며 “그게 쉽지 않아 사회 초년생 채용은 쉽지 않은데 정부의 인건비 지원 덕분에 박씨를 채용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성과 부담에서 자유로운 박씨는 보다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등 선순환 효과를 내는 중이다.

박신우(왼쪽)씨가 김지운 대표에게 자신이 작성한 영상 제작 기획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주=정민승 기자

박신우(왼쪽)씨가 김지운 대표에게 자신이 작성한 영상 제작 기획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주=정민승 기자

박씨는 정책 지원에 이어 ‘지역 청년 커뮤니티 활성화’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오후 6시에 퇴근해 저녁엔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고 주말엔 캠핑장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박씨지만 자신과 비슷한 청년 직장인들을 거의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드는 건 사실이다. 많지는 않아도 지역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다면 이런 공허함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다.

“지역 내 다른 일자리에서 일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고참과 2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난나고 하네요. 그 차이가 안 채워지는데, 그들이 얼마나 더 그 회사에서 버틸까 싶더라고요. 소통과 공감을 위한 지역 청년들의 모임, 꼭 필요합니다.”

박신우씨가 빽빽하게 적힌 이달 일정표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입사 첫해라 많은 급여는 아니지만,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이라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고 한다. 전주=정민승 기자

박신우씨가 빽빽하게 적힌 이달 일정표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입사 첫해라 많은 급여는 아니지만,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이라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고 한다. 전주=정민승 기자


전주=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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