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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소설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답이 되다

입력
2023.11.02 04:30
20면

<후보작 1> 서이제 '낮은 해상도로부터'

편집자주

※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6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11월 하순 발표합니다.

서이제 작가. 문학동네 제공

서이제 작가. 문학동네 제공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이 ‘기술 복제 시대에도 예술은 가능한가?’라는 도발적 질문을 던졌을 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던 장르는 영화였다. 영화라는 새로운 복제 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일순간 깨닫게 되었다. 작품의 원본성과 '아우라'라는 고전적 예술관으로는 동시대의 예술적 경험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른바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출현은 인간의 감각 지평의 근본적 변화를 일으키고, 예술의 미래에도 중대한 전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이제의 두 번째 소설집 '낮은 해상도로부터'는 우리에게 ‘디지털 시대에도 소설은 가능한가?’라는 유사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단순히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으로 가득한 현실이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작가가 탐구하고 있는 것은 좀 더 결정적인 전환, 즉 인간 경험의 근본적 변화이다. 모든 지식과 지각 체험, 그리고 커뮤니케이션마저 디지털 정보값으로 환원되는 세계에서 과거와 같은 경험은 가능하며, 여전히 소설은 쓰일 수 있는가.

'낮은 해상도로부터'는 소설의 유구한 토대였던 저 휴머니즘적 시공간의 붕괴를 목도하는 중이다. 이제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은 인간적 진실과 기억의 깊이 같은 것이 아니라 가상의 이미지들이 부유하는 적나라한 표층, 즉 스크린과 액정 화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래의 예술은 과거를 기억하는 대신 데이터로 저장할 것이며,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하는 대신 디지털 정보를 브리콜라주적으로 조합할 것이다.


서이제 소설집 '낮은 해상도로부터'

서이제 소설집 '낮은 해상도로부터'

그러나 서이제의 소설이 디지털 세계의 피상성을 비판하고 그 이전의 아날로그적 시대를 그리워한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인간적인 것, 자연적인 것, 진정한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동시대적 인식과 감각의 조건을 외면하게 만든다. 반면 서이제는 소설이라는 전통적 도구를 매개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경험과 기억이 산출되는 방식을 형식적으로 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것을 통해 소설이 진정으로 보고자 하는 것, 우리가 그로부터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관건은 서이제의 소설이 저 화려하고 명료한 이미지들의 매끄러운 시공간을 내부적으로 해체한다는 점이다. 해상도를 한껏 낮춘 서이제라는 소설적 스크린을 바라보게 되면 어느새 우리는 흐릿하고 불명료한 형상들, 한때 스크린으로부터 추방되었던 디지털 시대의 유령들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다시 묻자. ‘디지털 시대에 소설은 어떻게 가능한가?’ 서이제의 '낮은 해상도로부터'는 한국문학이 지금까지 내놓은, 가장 매혹적인 동시대적 대답이다.

강동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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