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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 아니다"는 용산구청장… 아직 자리 지키는 서울경찰청장 [이태원 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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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1주기 사흘 전인 10월 26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유임됐습니다. 지난해 참사 때도 현직이었던 김 청장은 사고 대비·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로 수사를 받는 책임자입니다. 그의 유임은 참사 당시 치안·방재·인파관리 지휘라인에 대한 책임 추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 흔한 '도의적 책임'마저 지려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면피의 향연을 자세히 들여다 봤습니다.
“0”
이태원 참사 1주기(29일)가 됐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도 없다.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159명의 귀한 생명을 잃고도, 우리 사회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참담한 숫자가 ‘0’이다.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가 검찰에 송치한 용산구청ㆍ용산경찰서 등 관계자 23명 중 기소된 이는 18명. 2월부터 시작돼 9개월째 진행 중인 1심 재판은 내년 상반기에나 선고가 나올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 사이 구속됐던 핵심 피고인 6명은 진작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최고 윗선에 대한 수사도 뚜렷한 성과 없이 1년째 답보 상태다.
박희영 용산구청장(구속 기소)은 보석 석방 이튿날인 6월 8일 구청에 출근한 이후로 정상 업무를 보고 있다. 복귀 첫날 교회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새벽 기도를 했다면서도, 구청에 찾아온 유족의 울부짖음은 끝내 외면했다.
법정에서도 박 구청장은 행정기관 수장으로서 안전관리 의무를 방기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 등)에 대해 “주최자 없는 행사에는 관리 책임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검찰 수사에선 “나는 신이 아니라 사고를 예측할 수 없었다”거나 “사람들도 사고가 날 줄 몰랐기 때문에 온 것 아니냐”고 항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청장직에서 내려오라는 요구에 대해선 “선출직이라서 사퇴할 수 없다”는 논리를 댄다.
간부급 실무자들도 자신들에겐 “군중 통제 권한이 없고 질서 유지는 경찰 업무”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자진 사임은커녕 징계받은 사람도 없다. 공무원 직무상 의무 위반 및 품위 손상 시 징계의결을 요구해야 한다는 법 규정에 따라, 용산구는 최원준 전 용산구 안전재난과장(구속 기소)과 문인환 전 용산구 안전건설교통국장(불구속 기소)에 대해 상급기관인 서울시에 징계를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시 인사위원회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서울시 인사 담당자는 “형사 절차가 끝나지 않아도 도덕적 의무 위반 등에 대해 폭넓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서도 “서로 입장이 첨예하게 다르고 인사위원들이 판단 근거로 삼을 자료가 제한적이라 고심이 깊다”고 설명했다.
현재 용산구 세금2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최 전 과장은 내년 말, 올초부터 공로연수 중인 문 전 국장은 두 달 뒤 정년 퇴직한다. 재판 결과만 기다리다 두 사람이 퇴임하면 최소한의 행정적 제재조차 불가능해진다. 유승재 전 용산구 부구청장(불구속 기소)도 지방 교육 파견이 다음달에 끝나 시에 복귀하는데, 역시 징계 수위는 결정되지 않았다.
경찰에 대한 처벌도 지지부진한 건 마찬가지다. 구속됐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송병주 전 112치안종합상황실장(업무상과실치사상 등),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과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증거인멸교사 등) 등 경찰 핵심 책임자 4명은 보석으로 풀려난 뒤 직위해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태원 치안을 총괄하는 이 전 서장은 핼러윈을 앞두고 정보과에서 10만 명 운집을 예측하며 경력 투입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올렸으나 별다른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참사 당일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무전 소리만으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어려웠다”며 형사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이태원 인파 밀집 위험을 경고한 용산서 정보보고서 등을 참사 직후 폐기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부장과 김 전 과장도 “규정에 따른 올바른 직무수행”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부장은 ‘보고서를 통해 안전사고를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확대해석”이라며 반박했다.
현재 책임자 처벌 논의는 오로지 ‘용산구’ 안에서만 한정돼 있다. 용산을 벗어난 윗선은 법적 책임은 고사하고 정치적ㆍ도의적 책임에서도 자유롭다. 수사선상에 오른 경찰 책임자 중 가장 높은 직급인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참사 며칠 전 핼러윈 인파 밀집 관련 보고를 받고 기동대 배치 등 적절한 대응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지만, 아직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최근 경찰 인사에서도 유임돼 당분간 수도 서울 치안책임자 자리를 유지하게 됐다. 참사 희생자 고 유연주씨의 아버지 유형우씨는 ”참사 한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고, 1주기가 돼도 누구 한 명 ‘내 실수다’ ‘내 잘못이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미래의 경찰관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 달라”고 절규했다.
참사 당일 술을 마시고 잠들어 보고를 두 차례 보지 못한 윤희근 경찰청장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윤 청장은 최근 언론 보도와 국감 등을 통해 공식 상황보고 2건 외에 메시지 등으로 총 11차례나 온 연락에 답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축소 해명’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가 컨트롤타워 최정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탄핵 소추됐다가 7월 25일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업무에 복귀했다. 빗발치는 사퇴 요구에는 “재난은 반복될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책임자가 그만두는 것으로 재난을 막을 순 없다”며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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