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70~80%는 치료 않고 추적 관찰만 해도 돼”

입력
2023.10.29 20:50
수정
2023.10.30 17:5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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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에게서 듣는다] 박근영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

박근영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동맥류는 전 인구의 2~3%에게서 발생하는데 터지면 3명 중 2명이 사망하거나 중증 장애로 이어질 수 있지만 70~80% 정도의 환자는 치료하지 않고 추적 관찰만 해도 된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박근영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동맥류는 전 인구의 2~3%에게서 발생하는데 터지면 3명 중 2명이 사망하거나 중증 장애로 이어질 수 있지만 70~80% 정도의 환자는 치료하지 않고 추적 관찰만 해도 된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뇌혈관 벽이 약해지면서 혈관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환이 ‘뇌동맥류(腦動脈瘤ㆍcerebral aneurysm)’다. 뇌동맥류는 언제 터질지 모르기에 ‘머리 속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뇌동맥류 치료 전문가’ 박근영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뇌동맥류는 전 인구의 2~3%에게서 나타나는데 혈관이 터지면 3명 중 2명이 사망하거나 중증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하지만 뇌동맥류 환자의 70~80% 정도는 치료하지 않고 추적 관찰만 필요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뇌동맥류는 50~60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므로 40세가 넘으면 예방적 차원에서 뇌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뇌동맥류가 왜 발생하나.

“발생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혈역학적으로 높은 압력이 가해지는 뇌혈관 부위가 비대칭적으로 부풀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뇌혈관 벽이 약해졌기에 파열될 위험이 적지 않다. 담배를 피우거나, 직계 가족 중 뇌동맥류 환자가 2명 이상 있거나, 고혈압·자가면역질환·특정 유전 질환 등에 노출됐다면 고위험군에 속한다.

뇌동맥류가 있더라도 자각 증상이 거의 없기에 자기공명혈관조영술(Magnetic Resonance Angiography·MRA)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뇌혈관조영술 등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될 때가 가장 많다. 간혹 두통이 심한 환자가 원인을 찾으려고 뇌 검사를 받다가 뇌동맥류를 발견하기도 한다. 두통이 뇌동맥류와 직접 관련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처음 겪는 극심한 두통이 생기면 뇌동맥류 파열을 시사하는 소견일 수 있다. 즉,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것 같았다’ ‘머리 안에서 뭔가가 터지는 것 같았다’ 등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완전히 다른 양상의 극심한 두통이 갑자기 발생하면 뇌동맥류 가능성이 높다. 뇌동맥류 크기 위치에 따라 신경이 눌리면서 일부 환자에게서 복시(複視)·안구운동장애·안검하수가 나타나기도 한다.”

-뇌동맥류가 있으면 빨리 치료해야 하나.

“꼭 그렇지는 않다. 뇌동맥류가 있어도 크기·위치·모양 등을 고려해 파열 위험이 높지 않으면 추적 관찰만 진행한다. 예를 들어 내(內)경동맥 상상돌기 주변에서 발생한 작은 뇌동맥류는 터질 위험이 매우 낮아 몇 년에 한 번씩 추적 관찰만 하면 된다. 또 80대 이상 고령인에게 뇌동맥류가 발견되면 시술·수술 위험이 파열 위험보다 크다고 판단되면 정기적인 추적 관찰만 해도 된다.”

-뇌동맥류는 어떻게 치료하나.

“뇌동맥류를 직접 제거하지 않고 뇌동맥류 속으로 피가 흐르지 않도록 차단하는 수술이나 시술을 시행한다. 머리를 열고 시행하는 개두술(開頭術)인 ‘클립결찰술’과 코일로 막는 ‘혈관 내 시술(코일색전술)’로 나뉜다.

클립결찰술은 가장 오래된 치료법으로 두개골을 조금 열어 풍선처럼 튀어나온 뇌동맥류 목 부분을 클립으로 꽉 집어주는 수술이다. 반면 대표적인 혈관 내 시술인 코일색전술은 마이크로카테터(미세 도관)를 혈관을 거쳐 뇌동맥류에 위치시킨 다음, 뇌동맥류 속을 아주 부드러운 백금 코일로 채워 넣어 뇌동맥류 안으로 혈액이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밖에 대형 뇌동맥류나 방추형(베틀북형) 뇌동맥류, 박리성 뇌동맥류를 치료하기 위해 특수 스텐트의 일종인 ‘혈류 전환기(flow-diverter)’와 뇌동맥류 입구가 넓을 때 사용하는 ‘혈류 차단기(Woven EndoBridge·WEB)’도 많이 사용하는 추세다. 혈류 전환기 및 혈류 차단기 삽입술은 코일색전술에서 한 단계 발전한 치료법이다.

코일색전술은 백금으로 만들어진 코일 여러 개를 뇌동맥류 안에서 엮어 실타래 형태로 만드는 것인데, 큰 뇌동맥류에서는 재발 가능성을 항시 염두에 둬야 하고 뇌동맥류 입구가 넓을 때에는 스텐트를 사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혈류 전환기는 뇌동맥류는 건드리지 않고 모(母)동맥에 특수한 형태의 스텐트를 넣어 뇌동맥류를 치료하는 것으로, 큰 뇌동맥류의 재발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이전에는 치료가 복잡했던 방추형 혹은 박리성 뇌동맥류 치료를 쉽게 할 수 있다.

혈류 차단기 삽입술은 바스켓 모양의 혈류 차단기 하나를 뇌동맥류 안에 안착시키는 방법으로, 뇌동맥류 입구가 넓어도 스텐트를 사용할 가능성이 적으므로 스텐트 사용에 따른 시술 시간·합병증·약 추가 복용 가능성을 많이 줄일 수 있다.

명심해야 할 점은 이러한 치료법이 상호경쟁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따라서 치료 방향을 정할 때는 여러 뇌혈관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치료법을 정하는 기준은.

“많은 환자가 머리를 여는 수술(개두술)보다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시술을 선호한다. 물론 환자가 항혈소판제나 항혈전제를 복용 중이라면 수술에 따른 출혈 부담이 높기에 시술이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젊은 환자에게서 10㎜ 이상의 대형 뇌동맥류가 발견된다면 재발 위험을 고려할 때 혈관 내 시술보다 클립결찰술이 유리할 수 있다.

결국 뇌동맥류 크기, 위치, 개수, 모양, 파열·재발 위험, 나이, 전신 상태, 동반 질환 여부나 복용 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치료법을 정해야 한다.”

-뇌동맥류 진단 후 파열을 막기 위한 생활 습관은.

“가장 중요한 건 혈압 관리와 금연이다. 고혈압 환자는 고혈압 약을 제때 복용해야 하며 가정에서 평소 꾸준히 혈압을 측정해 혈압이 평소보다 올라가지는 않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일부 환자는 가정에서 혈압을 측정해 혈압이 정상이라면 임의로 고혈압 약을 끊기도 한다. 이는 고혈압 약에 의해 혈압이 조절된 것이지 고혈압이 치료된 것이 아닐 때가 대부분이다. 또 추운 날씨에 새벽 운동을 한다거나 물구나무 자세를 만드는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등 갑자기 혈압이 올라갈 수 있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치료하지 않은 비파열성 뇌동맥류 환자뿐만 아니라 수술이나 시술로 뇌동맥류를 치료한 환자도 혈압 조절과 금연을 해야 한다. 뇌동맥류 환자는 건강한 사람보다 재발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기공명혈관조영술(MRA)로 촬영한 뇌동맥류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자기공명혈관조영술(MRA)로 촬영한 뇌동맥류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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