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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일 하늘이 보고 있다"던 리커창, 시진핑에 막판까지 쓴소리

입력
2023.10.28 04:30
수정
2023.10.28 17:5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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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쓴소리' '비운의 2인자' 리커창 사망]
임기 내내 시 정책 오점 지적한 '소신 정치인'
경제 정책 결정권 제한... 큰 빛은 보지 못해

지난해 10월 2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 중 시진핑(오른쪽) 국가주석과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2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 중 시진핑(오른쪽) 국가주석과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스터 쓴소리'와 '비운의 2인자'.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한 리커창(68) 전 중국 국무원 총리의 공직 인생은 이렇게 두 가지 표현으로 집약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폈던 주요 정책의 오점과 허점을 마지막까지 비판하는 등 '소신과 강단이 있는 정치인'이자, 시 주석 1인 통치 체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끝내 정계에서 퇴출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리 전 총리는 태자당, 상하이방과 함께 중국의 3대 정치 파벌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계열의 선두주자였다. '시장주의'에 기반한 경제 전문가로도 평가됐다. 한때 중국 경제를 측정하는 대표적 바로미터로 사용됐던 '커창 지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2007년 랴오닝성 당서기 시절 리 전 총리는 전기 소모량, 철도 운송량, 은행 대출 증가율 등 3개 지표를 합친 통계를 내놨다. 국내총생산(GDP) 같은 전통적 지표는 '조작'이 가능해 100% 신뢰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6억 인구, 집세도 못 내"... 시진핑의 '샤오캉 사회' 반박

27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대합실에 설치된 TV에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 사망 뉴스가 나오고 있다. 이날 중국 CCTV는 리 전 총리가 전날 상하이에서 심장병 발작을 일으켰고, 치료를 받았지만 27일 오전 0시 10분(현지시간) 상하이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뉴시스

27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대합실에 설치된 TV에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 사망 뉴스가 나오고 있다. 이날 중국 CCTV는 리 전 총리가 전날 상하이에서 심장병 발작을 일으켰고, 치료를 받았지만 27일 오전 0시 10분(현지시간) 상하이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뉴시스

2013년 '시진핑 1기' 체제에서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총리직에 올랐을 때만 해도, 중국 언론에선 '시리주허(習李組合)'라는 표현이 오르내렸다. '시진핑과 리커창의 조합'이라는 뜻이다. 1인자 시 주석이 정치·외교를, 시장주의자인 리 전 총리가 경제 정책을 각각 독자적으로 총괄하는 '투톱 체제'를 이룰 것이라는 시선이 반영된 것이다. 자기 소신과 주장이 강한 리 전 총리가 시 주석에게 호락호락 밀리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리 총리는 총리직을 수행하는 10년간 시 주석에게 수차례 쓴소리를 한 인물로 유명하다. 2020년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당시 그는 "(중국의 14억 인구 중) 6억 명의 월 수입은 겨우 1,000위안밖에 안 돼 집세조차 내기 힘들다"고 밝혔다. 시 주석의 선언인 '샤오캉 사회(의식주 걱정 없는 사회) 달성'에 대한 반박이었다. '상하이 봉쇄'로 중국 경제가 타격을 입었던 지난해 5월 주재한 '전국 경제 지표 안정 화상회의'에선 "모든 조치를 취해 경제 회복을 쟁취하라. 경제는 경제만이 아닌 중대한 정치 문제"라고도 강조했다. 경제보다 방역을 우선시한 시 주석의 정책 기조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후진타오 퇴장하며 리커창 어깨 툭툭...공청단의 몰락

지난해 10월 22일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폐막식에 참석한 후진타오(가운데 일어서 있는 이) 전 중국 국가주석이 회의장을 빠져나가면서 리커창 당시 국무원 총리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22일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폐막식에 참석한 후진타오(가운데 일어서 있는 이) 전 중국 국가주석이 회의장을 빠져나가면서 리커창 당시 국무원 총리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특히 올해 3월 총리직에서 물러나며 가진 국무원 직원들과의 고별 자리에선 의미심장한 발언도 했다.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는 묘한 말이었다. '보상을 바라지 말고 묵묵히 일하라'는 원론적 의미일 수 있으나, 20년 이상 유지됐던 '집단 지도 체제'를 허물고 1인 권력 체제를 완성한 시 주석을 겨냥해 마지막 쓴소리를 남긴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하지만 '철저한 2인자'에 그쳤다. 시진핑 1인 체제 강화 흐름에서 그의 경제와 민생 중시 노력은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종전까지 총리가 맡았던 중국 경제 분야 최고 의사결정기구 '공산당 중앙재경영도소조'의 조장 자리까지 시 주석이 가져간 탓이다. 운신의 폭이 넓기는커녕, 매우 좁았다는 얘기다. 공청단 배려 차원에서 '시진핑 3기' 지도부에 잔류할 것으로 점쳐졌던 당초 예상과 달리, 지난해 10월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통해 권부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당시 리 전 총리와 그의 정치적 후견인인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과의 '조우' 장면도 유명하다. 당대회 폐막식에 참석 중이었던 후 전 주석은 갑자기 수행원들 부축을 받으며 마치 끌려나가듯 회의장을 떠났는데, 퇴장 도중 리 전 총리 어깨를 톡톡 토닥이는 장면이 포착됐다. 공청단 대표주자였던 리 전 총리가 최고 지도부에서 탈락한 데 대한 불만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법했다. "공청단의 '완전한 몰락'을 생생히 보여 준 역사적 장면"이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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