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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는 에피소드로 말한 건, 미움보다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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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6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11월 하순 발표합니다.
이주란의 소설에는 극적인 사건이나 감정의 동요, 갈등의 전말이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그저 사건이 지나간 후 인물의 내면에 이는 고요한 마음의 자취를 천천히 따라갈 뿐이다.
'별일은 없고요?'에 실린 동명의 단편소설은 일 때문에 지방에 사는 엄마와 함께 지내며 생기는 소소한 일상을 다룬다. 아랫집 아저씨가 치매로 인해 방화를 저지른 후 집에서 지낼 수 없게 되자 얼마간 직장 동료에게 신세를 지다가 사직을 하고 엄마에게 간 것이다. 간략히 요약하자니 방화 사건이나 퇴직, 지방으로의 이주 같은 굵직한 사건이 여럿 등장하는 듯 보이지만, 이는 실상 등장인물의 이동을 설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계기일 뿐이다. 실제 이 소설의 많은 장면은 퇴근한 엄마와의 소소한 동네 산책, 일상적인 대화,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등 ‘별일’ 없는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다.
다른 소설도 사정은 비슷하다. ‘사람들은’이라는 단편은 ‘나’와 동명인 회사 동료 은영씨와 함께 지낸 시절의 이야기다. 표면에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같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동명이인인 은영씨는 내게 무슨 잘못인가 저지른 것 같다. 내게 전화를 걸어온 직장 동료가 ‘은영씨를 그렇게 만들고 지는 명상이나 하고 다닌다’고 흉보는 걸 보면 그러하다. 그러는 직장 동료에게 ‘나’는 ‘왜요, 좋은데요’ 하고 대답하는데, 그냥 하는 대답은 아니다. 이주란의 소설에는 이렇게 답하는 사람의 진심이 가득하다. 믿고 의지했던 은영씨로 인해 마음의 풍랑을 겪었지만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마음 같은 것은 없다.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떤 사건이 남긴 파장으로 숨죽여 울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저를 버린 사람들도 절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 가깝다. ‘그때 그랬다고 해서 지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늪에 빠지는 일에도 좋은 점이 있나 보다’ 생각할 정도로 속 깊은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주어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이 제목 뒤에 작가가 생략한 술어를 넣어 문장을 완성해 본다면 어떤 낱말을 떠올릴 수 있을까. ‘견딘다’나 ‘외롭다’ 같은 말이 먼저 생각나지만 이주란 작가라면 그보다는 ‘살아간다’라는 서술어를 연결해 보라고 할 것 같다. 살다 보면 무슨 일인가 겪게 되겠지만 사람들은 그럼에도 살아가려 애쓰고, 늘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그런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그리워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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