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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통령의 변화, 믿게 하려면

입력
2023.10.2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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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참패 후에야 총선위기 실감한 듯
뼈아픈 자성, 인사혁신이 진정성 척도
측근 인연 배제한 組閣 수준의 개각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이만희 신임 사무총장, 유의동 신임 정책위의장 등 `당 4역'이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찬을 한 뒤 용산 어린이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대통령실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이만희 신임 사무총장, 유의동 신임 정책위의장 등 `당 4역'이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찬을 한 뒤 용산 어린이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대통령실제공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을까.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은 반전이다. 집권 초만 해도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지지율은) 별 의미 없다”고. 여론에 귀 닫으면 국민의 요구를 이해하는 정치가 아니라 거꾸로 국민의 이해를 요구하는 통치가 된다. 그렇게 중도층을 다 떠나보내고 급기야 보수의 본산 TK에서도 내쳐졌다. 또 있다.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못 박은 게 겨우 두 달 전. 그게 지난주 “이념보다 더 중요한 건 국민의 삶”으로 바뀌었다. 두 경우 모두 앞선 말에 대한 완전한 부정이다.

도대체 어느 쪽이 진짜 윤 대통령인가. 일련의 발언으로 재확인하는 건 그가 확고한 정치철학을 가진 건 역시 아니란 점이다. 불안한 정치초보지만, 굳이 너그럽게 보자면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은 발달 진행형 정치인이다. 유능한 완성형 지도자를 갖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워도 그나마 바뀔 가능성이라도 보인 게 어디인가.

그래서 강서구 보선 참패는 윤 대통령에게 적기의 행운이다. 정권의 명운을 가를 본선은 반년 뒤 총선이다. 실패하면 곧바로 레임덕이다. 승부의 관건은 대통령 지지율이다. 코로나 방역 효과로 20년 4·15총선 당시 전 대통령 지지도는 무려 60%에 달했다. 민주당의 압승은 여기에 힘입은 것이다. 바꿔 말해 현 대통령 지지도로는 어떤 인물, 어떤 정책이든 총선 필패다.

윤 대통령의 변화 조짐은 반가우나 전제조건은 충족되지 않았다. 본인이 모든 문제의 근원임을 안팎으로 확실히 자인하는 게 출발점이다. “저와 내각의 반성” 식은 안 된다. 제 편 아니라고 당의 주요 정치적 자산을 다 들어내고, 문제 많은 측근과 낡은 인물들을 끝끝내 감싸 안은 이가 누구인가. 강고한 일인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당정 공동책임으로 은근히 비껴가려는 건 호방한 보스 스타일의 그답지도 않다.

그리곤 인사다. 인사혁신이야말로 변화의 진정성을 보이는 가장 신뢰할 만한 실행 조치다. 사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좌표 재설정을 통한 국가위상 제고와 경제·안보이익 강화 노력, 기록적인 세일즈외교 실적 등은 대단한 윤 대통령의 성취다. 이를 보잘것없이 묻어버린 게 지금까지의 자해적 인사다.

새 인사원칙은 분명해야 한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힌 이들은 무조건 배제가 첫째다. 초기 윤핵관을 비롯해 측근으로 분류된 이들은 대통령과 정권에 기여는커녕 염증만 키웠다. 그마저도 아득한 옛 인물들을 뒤져 쓸 정도로 풀이 말랐다. 작은 인연과 사소한 견해차에서 자유로워지면 비로소 분야마다 합리성과 실력 자질을 갖춘 새 인재들이 보일 것이다.

덧붙여 자신이 내친 껄끄러운 이들을 다시 끌어안는 파격도 고려할 만하다. 오해를 무릅쓰고 거명하자면 유승민 같은 인물이다. 대중정치인으론 모르겠으되 합리적인 개혁보수 정책가로서 정부 분위기를 일신하는 효과는 누구보다 클 것이다. 이제 순방에서 돌아온 윤 대통령은 당장 조각(組閣) 수준의 대대적 개각과 대통령실 개편부터 고민해야 한다. 당 문제에서도 변화 전 대리인인 김기현 대표체제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다. 혁신적 인사 외에 당장 지지율을 높일 다른 방안도, 남은 시간도 없다.

예전 윤석열 후보가 한참 뒤처진 판세일 때 민주당 쪽에서 “생각보다 진화가 빨라 안심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우려가 맞았다. 최근엔 어느 매체에서 “(윤은) 바뀌면 무섭게 변하는 사람”이라는 그쪽 인사의 전언을 읽었다. 이번에도 맞길 바란다. 그가 더 좋아서가 아니다. 총선에서 무너지면 남은 3년의 국가적 표류 상황이 너무도 길고 끔찍할 것 같아서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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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한국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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