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사과하는 일본인, 예의가 바른 것일까 아닌 것일까

입력
2023.10.28 04:10
12면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주변의 평판을 의식하는 수준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만, 지연이나 학연 등까지 포함시킨다면 한국 사회에서도 일본만큼 외부적 요인에 따라 인간관계의 맥락을 규정지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일러스트 김일영

주변의 평판을 의식하는 수준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만, 지연이나 학연 등까지 포함시킨다면 한국 사회에서도 일본만큼 외부적 요인에 따라 인간관계의 맥락을 규정지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일러스트 김일영

◇ “일본인은 예의가 바르다”는 명제의 진위는?

일본인은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한다고들 한다. 실제로 일본에 살면서 이를 실감할 때가 많다. 길을 걷다가 손가락이 스치기라도 하면 자기 잘못이 아니어도 정중한 사과의 말을 건넨다. 회사 업무에서 실수를 한 경우에는 죄인이 따로 없다. 자기 실수로 인한 ‘피해자’ 동료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폐를 끼쳤다며 고개를 숙인다. 일본인이 해외여행을 가서 현지 가이드에게 듣는 조언 중 하나는 “너무 자주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의사소통을 할 때 개인이 자기주장을 솔직하고 명백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문화에서는 ‘폐를 끼쳤다’,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 정말로 죄가 많은 사람인 양 오해를 살 수 있다. 습관처럼 사과의 말을 남발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진심으로 노력하는 일본인을 많이 보았다. 그 덕분에 일본에서는 어디를 가나 대체로 점잖고 예의 바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일본에 오래 살다가 정반대의 경우도 경험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붐비는 지하도로나 보행자도로 중에는 간혹 보행 방향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있다. 때마침 도로가 텅 비어 있어서 별생각 없이 정해진 보행 방향을 반대로 거슬러 가고 있다고 하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일본인다운’ 예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몸을 피하지 않거나, 그 와중에 몸을 부딪혔다면 사과는커녕 냉담한 표정으로 나무라는 말을 내뱉을지도 모른다. 분위기가 험악해질 정도로 시비를 거는 경우는 없지만, 보통 때라면 정중하게 사과했을 상황에 대뜸 무례한 반응이니 어안이 벙벙하다. 평소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하지만 어떤 때는 표변하는 태도로 인해 외국인 중에는 일본인이 표리부동하다는 인식을 갖는 경우도 있다.

◇ ‘세켄’ 때문에 예의를 지키는 일본인

그렇다면 일본인은 예의가 바른 것일까, 아닌 것일까? 일본 사회를 실제로 경험했던 입장에서 답하자면, ‘그렇다’이기도 하고 ‘아니다’이기도 하다. 많은 일본인이 예의 바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배려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알쏭달쏭함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세켄(世間)’이라는 개념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세간’이라고 쓸 수도 있지만 특유의 맥락이 있는 만큼 여기에서는 일본말 그대로 세켄이라고 쓰겠다. 원래는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 출가한 ‘출세간’에 대해 속세의 인간 세계를 뜻하는 불교 용어이지만, 일본에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바깥세상을 뜻하는 일상 용어로 흔히 쓰인다. 그런데 말의 쓰임새가 꽤 재미있다. 예를 들어,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 혹은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을 ‘세켄시라즈(世間知らず, 세켄을 모른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남들의 평판이 좋지 못한 상황을 ‘세켄의 모양이 좋지 않다(世間体が悪い)’, 남보기에 떳떳하지 못한 상황을 ‘세켄이 좁다(世間が狭い)’고 말한다. 세속적인 평판이라는 맥락에서 세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표현이 많은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세켄은 특정한 행동 양식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문화적 압력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본 사회는 일사불란하게 행동하고 화합할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동조 압력이 강하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세켄을 늘 의식하는 정서가 동조 압력을 부추기는 문화적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문화에 관한 복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본인의 예의 바름은 세켄, 즉 세속적인 평판을 의식하는 정서에서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 어떤 이유이든 타인에게 거칠고 무례하게 구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다만, 타인에게 예의를 갖추어 대하는 태도가 평등한 개인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때때로 세속적인 평판을 의식해야 한다는 명분이 사라지는 순간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행 방향을 지키지 않는 상대방에게는 거침없이 무례함을 드러내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는 상대에게는 예의보다 질책이 먼저 날아오거나, 차별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그런 면에서 일본 사회의 예의 바름이란, 인간에 대한 조건 없는 존경과 친절이라기보다는, 세켄의 규범을 확인하는 일종의 문화적 코드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오해는 마시라. 일본인이 표리부동하다는 뜻은 아니다. 일본 문화가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는 것은 틀림없다. 다만, 세켄을 의식하는 정서가 그보다 강하기 때문에 때때로 예의보다 형식적인 규범에 집착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의미다.

◇ ‘세켄’을 의식하는 일본, ‘남들’을 두려워하는 한국

일본에서 세켄이라는 개념이 학문적으로 주목받은 경위가 있다. 서양의 사회학은 독립적이고 평등한 ‘개인’, 그리고 그 개인들이 집단을 이룬 ‘사회’를 전제로 삼고 다양한 이론을 펼친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그런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례가 종종 있다. 앞서 평소에는 예의 바름을 중시하지만 규칙을 어기는 순간에는 가차 없이 개인에 대한 존중을 거두는 행태를 예로 들었는데, 사실 그런 행동은 ‘개인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고방식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일본과 서양이 사회를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점을 탐구하다가 세켄이라는 개념에 착안한 것이다.

세켄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면, 현재 자기와 이해관계가 있거나 혹은 앞으로 이해관계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인간관계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가족, 친구, 동료 등 현재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친한 사람들뿐 아니라 동일 업계의 종사자들, 학교나 조직의 동창회 멤버들, 비슷한 취미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동네 사람들 등 의외로 다양한 인간관계와 공동체가 이에 포함된다. 일반적인 의미의 국가나 사회보다는 좁은 세상이지만, 앞으로 이해관계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공동체 성원을 포함하면 의외로 큰 집단이다. 세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면, 이런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외국인이나 외부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향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인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대거 모이는 서양식 파티에는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관계를 설정할 맥락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한 참석자와 명함을 교환하고 동종 업계의 종사자라는 것을 알면, 그때부터는 대화가 술술 풀린다. 세켄이라는 관점에서 인간관계의 맥락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관계의 양상이 서양인의 눈에는 낯설겠지만, 한국인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이나 외부적인 요인에 따라 인간관계의 맥락과 원근을 규정하는 성향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지연, 학연, 연령 등이 중요하다. 처음 만나 서먹한 사이도 동일 지역 출신임을 확인하거나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것을 알면 갑자기 대화가 꽃핀다. 사회적 접점을 찾기 어려울 때는 나이에 따라 서열을 정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이 세속적 평판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점에서도 세켄을 의식하는 일본인과 비슷한 면이 있다. ‘남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어서’ 죽어라 돈을 버는 사람도 있고, ‘남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도록’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부모도 있고, ‘남들의 눈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명품을 사야겠다는 사람도 많다. 다른 사람의 평판 때문에 피곤하게 사는 것은 한일 공통인가 싶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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