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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실패하며 살았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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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만화가 일상인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사이로 책장을 끼워가며 읽는 만화책만의 매력을 잃을 수 없지요. 웹툰 '술꾼도시처녀들', 오리지널 출판만화 '거짓말들'의 만화가 미깡이 한국일보를 통해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만화책을 소개합니다.
요즘 나는 ‘MZ세대’라는 단어를 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신체 반응을 겪고 있다. 세대론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을 하나로 싸잡아서 일반화하고, 마케팅이나 공약의 타깃으로 삼기 위한 손쉬운 호명. MZ세대의 특징으로 꼽는 요소들(자기 계발, 플렉스, 과감한 투자, 워라밸 추구…)은 일부 청년들에 한정된 이야기다. ‘오마카세를 즐기고 값비싼 명품도 척척 사는 MZ세대’라는 프레임 아래 존재가 지워진 현실의 수많은 청년은, 암울한 미래가 예감되는 가운데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하루하루 가까스로 살아가는 중이다.
강산 작가의 출판 만화 ‘루의 실패’는 인구통계학적으로는 MZ세대에 속하지만 세대의 특징으로 규정된 내용과는 영 거리가 먼 친구들의 이야기다. 예술적 재능이 있(었)지만 자주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 루, 모두에게 친절하고 다정하나 사실 깊은 환멸을 느끼고 있는 블래키, 직설적이고 무례한 슬기, 말을 하지 않는 솜차이, 너무 착하고 뻔한 말만 해서 루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네모, 루에게 잠시 자리를 내줬던 최정원. 이들이 웃고, 싸우고, 엉뚱한 짓을 벌이려는 루를 말리고, 일어나지 못하는 루를 일으키고, 그러나 답답해하고, 질시하고, 서로를 긍휼히 여겼다가도 결국 넌더리가 나서 작별하게 되는, ‘지랄 같은’ 한 시절을 떠나보내는 그런 이야기다.
루와 친구들의 시답잖은 일상과 실패담이 마냥 웃기거나 한심하지만은 않은 게, 외로움을 타고 변덕스럽고 대책 없는 루에게서 한때의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걱정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블래키의 마음도 너무 내 것이다. 슬기처럼 막돼먹게 군 적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나는 네모였다가 누군가에게는 정원이었을 것이다. 앞이 안 보이는 미래가 불안하고 절박해서 혼자 헤매다가 발이 꼬여서 넘어지던 날들. 매일 실패하던 날들. 자꾸 그때가 생각나서 먹먹하고 아파왔다.
그림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홈통(만화 칸과 칸 사이의 공간) 없이 균일하게 나눈 칸 안에서 인물들은 아주 조금씩 움직인다. 단순한 그림체에 클로즈업도 역동적인 묘사도 없는데, 단지 어깨가 살짝 비스듬해지는 것만으로, 작은 눈동자가 약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너무나도 잘 전달된다. 작은 변화로 얼마나 많은 것을 탁월하게 표현해내는지 그 경제성이 놀랍고 아름답다. 색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공들여 그린 만화를 한 칸 한 칸 유심히 보는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해피 아워’를 보고 나온 루가 말한다. “누군가 공들여 만든 걸 보는 건 역시 유쾌한 일이야.” 한참 있다가 블래키가 대답한다. “루. 그림 다시 그려.” 강산 작가에게 이 대사를 돌려주고 싶다. “만화 계속 그려주세요.” 이 개성 넘치는 작품 이후에 어떤 걸 또 볼 수 있을지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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