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척으로 '반전'을 쓸 순 없다

입력
2023.10.2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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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달 23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이스라엘 남부 도시 스데로트에서 촬영됐다. 스데로트=AFP 연합뉴스

이달 23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이스라엘 남부 도시 스데로트에서 촬영됐다. 스데로트=AFP 연합뉴스

반전(反戰)을 이유로 특정 문학을 배척하는 일은 온당한가. 지난 한 주 동안 가장 고민했던 논제다. 세계적 규모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벌어진 시상식 취소 사태를 지켜보면서다.

사건의 맥락은 이랬다. 도서전 산하 문학 진흥 단체인 리트프롬은 매년 아시아·아프리카·아랍·남미권 등의 여성 작가 작품(독일어 번역본)을 대상으로 리베라투르상 수상작을 선정해 도서전 기간에 시상을 한다. 그런데 이달 20일 예정됐던 시상식이 일주일 전 돌연 취소됐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기습 공격한 후 전쟁이 발발한 지금, 팔레스타인 출신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에게 시상하는 행사는 적절치 않다고 주최 측은 판단을 내렸다. 수상 결정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시상식에 작가·독일어 번역가(퀸터 오르트)의 대담 행사까지도 사라졌다.

이는 즉시 비판을 불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압둘라자크 구르나, 아니 에르노와 올가 토카르추크 등 1,000명(19일 기준)이 넘는 전 세계 작가들이 시상식 취소 결정을 규탄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고, 아랍권 출판계에서는 도서전 불참을 선언했다. 석연치 않은 정황들도 논란을 부추겼다. 리트프롬의 설명과 달리 쉬블리는 시상식 취소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고, 이번 행사에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잘 담겠다"는 도서전 회장(위르겐 부스)의 발언은 반전이 아닌 '친이스라엘' 색깔을 두드러지게 했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 전미도서재단 유튜브 캡처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 전미도서재단 유튜브 캡처

예술과 현실 정치의 완전한 분리는 불가하다. 그럼에도 진짜 '문학'이라면 평화를 말하지 않을 리 없다. 저명한 문인들이 답한 문학의 역할에는 공통점이 있다. 끌어안는다는 것. 복잡하고 난해한 현실이라도, 민족 국경 인종 성별 등의 모든 경계를 넘어 인간을 끌어안는 게 문학이다.

"반이스라엘적, 반유대적"이라고 공격받은 쉬블리의 대표작 '사소한 일'(2017)은 그런 의미에서 진짜 문학이다. 1949년 한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소녀를 강간·살해한 실화를 소재로 삼은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이를 종교나 인종 문제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사소하게 취급받는 것(생명)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에 집중한다. 폭력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누구나(심지어 작가 본인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의식, 윤리적 문제를 조명한다. 그렇기에 "이 끔찍하고 잔인한 시기에" 팔레스타인 작가들을 배척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감정, 문학에 대한 성찰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문인들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마침 DMZ 평화문학축전(25일) 참가를 위해 방한한 쉬블리는 이번 논란에 대해 말을 아꼈다. 다만 자신의 작품 설명을 통해 명료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방한 일정 동안 쉬블리와 가까이에서 지낸 문인에 따르면,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2주가량 공황 상태로 지냈다는 그는 주변에 "시상식을 했다면 수상을 즐거워하는 자리가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됐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는, 배척으로 반전(反戰)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증명한다. 양측에 6,5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비극적 현실의 반전(反轉)도 어렵다. 문학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배척보다는 포용으로 '반전'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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