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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쓰레기' 낙엽의 변신, 퇴비부터 친환경 에너지 저장 장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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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청명한 가을 잘 보내고 계시나요. 단풍놀이 계획은 있으시고요.
아침 출근길에는 코끝이 시린 요맘때부터 이듬해 한겨울까지 폐기량이 대폭 늘어나는 쓰레기가 있습니다. 바로 낙엽인데요.
나무에 달린 잎이 울긋불긋 꼬까옷을 갈아입을 때는 참 아름답고 보기도 좋지만, 땅바닥에 떨어진 순간부터는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는 '낙엽과의 전쟁'이 곳곳에서 벌어집니다.
충청북도 '낙엽 재활용 방안 연구 용역 보고서'(2020)에 따르면, 나무 한 그루가 떨궈내는 낙엽을 건조해 측정한 무게(건중량)는 2.4㎏였다고 합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의 가로수는 942만여 그루(2020년 기준)로, 단순 계산하면 가로수에서만 연 2만2,608톤의 낙엽이 발생하는 거죠.
낙엽은 보통 일반 쓰레기와 똑같이 처리됩니다. 단독주택에서 나온 소량의 낙엽은 종량제 봉투에 꽉꽉 눌러 담아 배출하면 됩니다. 학교나 아파트 단지 등에서 대량으로 나온 낙엽은 폐기물 처리 업체에 위탁하거나, 동주민센터에 신고한 뒤 대형 폐기물로 배출하면 되고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가을·겨울철에 무더기로 쏟아지는 낙엽은 골칫거리입니다. 최소 수백, 많게는 수천 톤에 달하는 양이 관내 가로수에서 쏟아지니까요. 환경미화원을 다 동원해도 일손이 모자라면, 아예 폐기물 업체에 맡기기도 합니다. 지역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보통 최소 3,000만~4,000만 원 예산이 용역에 들어가니 적잖은 비용이죠.
이렇게 모인 낙엽들은 일반 생활 폐기물처럼 매립되거나, 소각됩니다. 서울 강남구는 "가로 청소 담당인 용역업체에서 폐낙엽을 수거한 후 민간 소각장에서 처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낙엽을 태우면 탄소와 미세먼지가 배출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지자체는 재활용을 시도하는데요. 서울 강동구는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 없이 모은 것을 농장 등에서 비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송파구는 매년 관내 가로수 은행잎 10여 톤을 모아 강원 춘천시 남이섬으로 옮깁니다. 남이섬은 지리상 서울보다 낙엽이 빨리 지는 점에 착안해 10월부터 차곡차곡 모은 낙엽을 11월 중순 남이섬 은행나무길에 뿌려 관광자원화하는 것이죠.
현재까지 가장 보편화된 낙엽 재활용 방법은 부숙(썩혀서 익힘)을 통해 퇴비로 만드는 것인데요.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 한편에 위치한 '낙엽 저장소'도 대표적 사례입니다. 전체 부지가 48만 ㎡에 달하는 서울숲 공원에서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50톤에 달하는 낙엽이 발생합니다. 절정일 때는 하루에 200L 마대로 200포대까지 낙엽이 모일 정도이고요.
이곳 낙엽 저장소에서는 2015년부터 공원 내 낙엽을 모으고, 숙성시켜, 다시 서울숲을 가꾸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서울숲 내 새로운 정원 조성 등에 쓰였고, 내년에는 강남구 율현공원 재조성 공사 때도 퇴비로 활용할 계획이라네요.
다만 '모으기'에 일손이 많이 들어간다는 난관이 있는데요. 공원 관리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낙엽 수거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시민들의 도움과 참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도 가족, 회사, 친구 등 여러 단위로 모인 시민들과 공원 직원들이 함께 낙엽을 줍고, 이후 서울숲에 대한 짧은 안내 시간도 가졌다고 하네요. 올해도 다음 달부터 봉사자를 모집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모인 낙엽들은, 서울숲 꽃사슴 방사장 인근 공터에 작은 언덕을 이뤄 쌓이게 됩니다. 18일 현장을 방문해 보니 뒤편에 쌓여 있는 오래 묵은 낙엽은 이미 흙에 가까운 짙은 회갈색을 띤 반면, 며칠 전 앞쪽에 쌓아둔 작은 낙엽 뭉치들은 아직도 초록과 초콜릿 빛깔을 띠고 있었습니다. 양혜정 서울숲 관리사무소 운영팀장은 "잘 썩지 않는 침엽수나 은행잎, 낙엽과 함께 섞여 들어온 쓰레기는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골라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쓸모없는 낙엽이 유용한 퇴비로 재탄생하기 위해,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뿐입니다. 2~3년 동안 자연의 비와 바람, 눈을 맞으며 서서히 부식되는 가운데, 1년에 두세 번 '유용미생물(EM) 용액'을 넣어 포클레인으로 섞어주는 작업도 한다네요.
당장 우리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지만, 자연에서 쉽고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낙엽을 활용해 고부가 가치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려는 연구와 실험도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연말 낙엽으로 친환경 종이를 만드는 우크라이나 스타트업 '릴리프(Releaf)'에 250만 유로(약 35억 원)를 투자했습니다.
국내에서도 흥미로운 연구가 있는데요. 카이스트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공동연구팀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낙엽을 이용해 '마이크로 슈퍼커패시터'를 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단어가 어려운데, 초소형(마이크로)에다 축전 용량이 매우 큰(슈퍼) 전기 저장 장치(커패시터·축전기)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뭇잎 에너지 저장 장치'인 셈이죠.
1,000조 분의 1초를 의미하는 매우 빠른 '펨토초' 레이저를 낙엽 위에 쏴서, 전자가 오갈 수 있는 마이크로 나노 구멍을 만드는 게 핵심입니다. 연구를 맡은 카이스트 김영진 기계공학과 교수는 "낙엽은 탄소가 풍부한데, 탄소를 어떻게 잘 배열하느냐에 따라 다이아몬드도 되고 그라파이트(흑연)도 되고 그래핀도 된다"며 "그래핀 구조가 되면 전기 전도도가 살아나서 부도체인 낙엽이 전도체로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구팀은 최근에는 나무나 낙엽을 빻아 가루로 만들고, 그 가루를 레이저로 태워 그라파이트 소재 2차 전지 음극재로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김 교수는 낙엽을 연구 재료로 택한 이유에 대해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고, 저렴하고, 공정 과정이 깨끗하고, 화학 제품이 안 들어가고, 제품을 다 쓴 뒤 버려도 생분해되는 '그린 테크놀로지' 조건에 부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낙엽의 변신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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