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은 나의 스승, 거대한 숙제, 영원한 채권자" 김명인이 꼽은 단 한 권의 책

입력
2023.10.27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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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초판 발행된 '전태일 평전'
그 어떤 책보다 내게 영향을 준 책"

편집자주

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어떤 사람들은 집의 방 한 칸을 통째로 책에 내어주는 걸까요. 서재가 품은 한 사람의 우주에 빠져 들어가 봅니다.


13일 인천 미추홀구 인하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명인 교수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간직할 단 한 권의 책으로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꼽았다. 전태일 평전인 책은 1983년 출간 당시 군부독재로 인해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의 이름으로 출간됐다가 개정 과정에서 원래 저자가 밝혀졌다. 인천=하상윤 기자

13일 인천 미추홀구 인하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명인 교수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간직할 단 한 권의 책으로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꼽았다. 전태일 평전인 책은 1983년 출간 당시 군부독재로 인해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의 이름으로 출간됐다가 개정 과정에서 원래 저자가 밝혀졌다. 인천=하상윤 기자

"어떤 철학 책, 사회과학 책, 문학 책보다 이 책이야말로 제게 영향을 준 책이에요. 전태일은 나의 스승이죠."

정년퇴임을 앞두고 서가를 정리하고 있는 김명인 교수가 마지막까지 간직할 단 한 권의 책은 무엇일까. 그는 조금도 주저 않고 1983년도에 초판 발행된 '전태일 평전'을 꼽았다.

돌베개에서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의 초판 지은이는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로 표기되어 있다. 사실 이 책의 진짜 저자는 인권변호사 조영래였음이 알려진 건 그의 사후인 1991년 1차 개정판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군부독재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일본에서 가명으로 출간되어야 했으며, 한국에서 초판이 출간되고도 한동안 금서로 지정되어 암암리에 구해 읽어야 했다. 김 교수는 그보다 열사의 삶을 '개인의 창작물'로 귀속하고 싶지 않았을 저자의 내적 동기가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책은 전태일의 생애와 사상에 초점을 맞춰, 자신과 동료들이 겪고 있던 고통스러운 노동 현실에 분노하여 투쟁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그린다.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된 그해 6월, 그는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곳곳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곳에서 여러 차례 책을 뒤적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인천=하상윤 기자

곳곳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곳에서 여러 차례 책을 뒤적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인천=하상윤 기자

김 교수는 평생의 부끄러움 중의 하나로 ‘자기희생을 못했다’는 것을 꼽았다. 물론 그 자신도 감옥살이를 지냈고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기도 했다. 하나 누군가는 대의명분을 위해 모든 실존을 걸었으나, 자신은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발을 뺐다는 것이 평생 그에게 숙제로 남았다. 그는 여러 저서와 글에서 전태일을 '부채감과 열패감과 부끄러움의 낙인을 찍은 존재'라 일컬으며 '무엇이 전태일을 영원한 채권자로 만들었고 나를 영원한 채무자로 만들었'는지 자문한다.

"만 권의 책을 읽어도 이 분(전태일)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지식이 뛰어난 것도, 공부를 많이 한 것도,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자의 삶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자신의 삶을 바친 그 사유의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게 평전에 녹아 있어요. 이 책은 서슴없이 내 인생의 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너무 압도적입니다."

40년의 세월을 모두 끌어안은 듯, 김 교수가 간직하고 있는 책의 페이지는 누렇게 색이 바랬다. 하상윤 기자

40년의 세월을 모두 끌어안은 듯, 김 교수가 간직하고 있는 책의 페이지는 누렇게 색이 바랬다. 하상윤 기자


인천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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