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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웅"...모친 임종에도 이스라엘서 자국 노동자 90명 구한 태국 여성

입력
2023.10.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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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여성 위파와디 반나차이
노동자 도움 요청에 교전지로
말기암 어머니 "노동자 도와라"

이스라엘에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태국 여성 위파와디 반나차이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공격으로 곤경에 빠진 현지의 자국 노동자 90여 명을 구해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위파와디 SNS 캡처

이스라엘에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태국 여성 위파와디 반나차이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공격으로 곤경에 빠진 현지의 자국 노동자 90여 명을 구해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위파와디 SNS 캡처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태국 여성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공격으로 위기에 빠진 자국 노동자 수십 명을 구한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여성은 노동자들을 돕느라 고국에 있던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19일(현지시간)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태국 여성 위파와디 반나차이(40)는 15년 전 남편을 따라 이스라엘로 이주해 법률사무소를 운영해 왔다. 그는 주로 이스라엘 내 태국 노동자들의 법적 문제를 다뤄 왔다.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시작되면서 현지에 있는 태국 노동자들은 위파와디에게 도움을 요청해 왔다.

연락을 받은 위파와디는 지인과 함께 차를 몰고 교전지역으로 들어갔다. 이스라엘군은 현장이 위험하다며 진입을 막았지만, 위파와디는 설득 끝에 노동자들을 구하러 갈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를 보내지 않으려는 고용주와의 갈등이 빚어지거나 여권 등 출국에 필요한 문서가 불타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위파와디는 무사히 노동자들을 대피시켰다. 그의 도움으로 대피한 태국 노동자는 약 9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파와디는 전장에서 노동자를 구하느라 정작 자신의 어머니 임종은 지키지 못했다. 말기암 투병 중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지난 13일 숨을 거뒀다.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위파와디에게 그의 어머니는 "나는 살기 어려우니 이스라엘에 남아 태국 노동자들을 도우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태국 북동부 농부아람푸주에 거주하는 위파와디의 아버지는 딸이 아내와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하면서도 "아내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태국인들을 쉬지 않고 도운 딸을 자랑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위파와디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17일 태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현지 매체에 "내게 마법의 부적 같은 건 없고, 단지 신에게 기도할 뿐"이라며 "이스라엘에서 일하는 태국인들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안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태국인들은 SNS 등을 통해 위파와디를 '진정한 영웅', '천사'라고 칭하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위파와디의 도움으로 아들과 상봉한 한 태국인은 "다리에 총을 맞은 내 아들과 다른 노동자들이 위파와디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라며 "위파와디를 고마운 영웅으로 부르는 게 맞다"고 밝혔다.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태국 노동자 30명이 숨지고, 17명이 하마스에 인질로 억류돼 있다. 외국인 사망자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이스라엘에는 주로 농장 노동자 등 태국인 약 3만 명이 거주 중이었고, 그중 약 5,000명이 가자지구 인근에서 일해 피해가 유독 컸다. 이날 태국 외교부는 이스라엘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 시신 중 신원이 확인된 8구가 20일 오전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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