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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지 마시오” 대신 “만져 보시오” 전시가 늘어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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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ㆍ소ㆍ문’은 ‘수상하고 소소한 문화 뒷얘기’의 줄임말로 우리가 외면하거나 놓치고 지나칠 수 있는 문화계 이야기들을 다룹니다.
"만져 보시오"를 허용하는 미술관·박물관을 가 보셨나요.
미술관·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내 문구인 “만지지 마시오” 대신 “만져 보시오”를 내건 전시가 부쩍 늘고 있습니다. 장애인·고령자·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가 물리적·심리적 장애물 없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무장애(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정책이 확산되는 것이지요.
국립중앙박물관이 전시 유물 모형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전시를 연속으로 개최하고 있는 게 대표적입니다. 박물관은 금동반가사유상 2점이 전시된 박물관 내 ‘사유의 방’ 전체를 지난달 14일 실제 크기와 같은 금속 모형, 부조 모형 등으로 꾸민 ‘여기, 우리, 반가사유상’전을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촉각패드, 오디오 가이드북이 동원된 전시는 12월 7일까지 열립니다.
지난 5월 26일~이달 9일 열린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전이 누적 관람객 9만1,443명으로 큰 호응을 받자, ‘배리어 프리’ 전시 규모를 확대한 것입니다. 당시 전시는 전시장 초입에 ‘말 탄 사람모양 토기’ 등 총 8점의 모형을 관람객이 만져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3D 출력물로 만든 유물 복제품과 함께 촉지 패드로 읽을 수 있는 디지털 점자정보 등으로 시각장애인의 이해를 도왔습니다.
장애인이 일상에서 자신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작품을 관람객이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한 이색 전시도 열렸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이 예술의전당과 함께 22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연 장애예술기획전 '내가 사는 너의 세계'입니다.
이 전시에서 ‘라움콘’ 팀은 작가 자신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디자인한 작품을 내놓고 관람객의 착용을 권했습니다. 이기언(46) 작가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나타난 손떨림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이에 그는 엄지에 끼워 쓰는 은제 젓가락, 팔목에 끼워 쓰는 은제 숫가락, 한 손으로 끼우고 벗을 수 있는 양가죽 장갑 등을 디자인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집게의 손가락 걸이에 엄지를 넣고 검지손가락으로 힘을 주어 음식을 집는다’와 같이 작가가 떨림체로 쓴 ‘설명서’와 함께 내놨습니다.
지난 13일 전시장에서 직접 이 작품들을 착용해 봤는데요. 비장애인으로서는 사실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느끼는 감각과 경험을 관람객에게 현대예술의 형태로 전달함으로써 장애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고, 영감을 주겠다는 게 작가의 기획의도로 풀이됩니다. 음악과 달리 시각장애인이 향유 대상에서 소외됐던 미술의 장벽을 허문다는 의미도 큽니다.
이 같은 현상은 1970년대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배리어 프리 요구가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확산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유독 국·공립 전시관에서 배리어 프리가 크게 늘어난 것은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장애예술을 강조한 영향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예술 전문가는 “최근 청와대에서 ‘장애인문화예술축제’를 여는 등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장애예술에 관심을 보이자 국·공립 전시관이 앞다퉈 배리어 프리 전시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라며 “어떤 이유에서건 장애인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만 "이 같은 전시가 학예 관점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된 것인지는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부 작품의 견본을 만질 수 있게 해 흥미를 유발하는 정도의 전시를 일회성으로 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현대미술작가 하루에 무라야마가 시각장애인 아들을 위해 모든 전시작을 만질 수 있도록 기획해 전시하고 운영하도록 한 일본 도쿄 시부야구 톰갤러리 등의 사례는 좋은 예입니다. 작품 구성과 설명에도 완결성과 치밀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배리어 프리 전시를 하더라도 전시장 안팎에서 장애인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 되기 십상이란 점도 유의해야 할 대목입니다. 일본 도쿄 지하철 오테마치역에는 미쓰비씨 1호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지하 배리어 프리 루트'가 있습니다. 배리어 프리를 위해 특별한 기획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벗어날 필요도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는 휠체어를 탄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전시작의 설치 높이를 기존보다 낮추고 보다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전시도 열립니다. 의지만 있다면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 관람객의 호응을 얻는 실천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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