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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있었지만, 없었던 그때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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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다수의 철학서를 펴내기도 한 진은영 시인과 20년 이상 출판 편집 기획자 생활을 거쳐 온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 글을 씁니다.
엘렌 식수(1937~)와 카트린 클레망(1939~)이 함께 쓴 '새로 태어난 여성'(1975)은 여성적 글쓰기의 교과서이자 페미니즘 문학을 위한 고전이다. 제목은 ‘그때 그곳에 있었지만 없었던 여성’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난날 ‘있었지만 없었던 여성’의 모습은 카트린 클레망이 쓴 1부의 내용이고, 주체적으로 ‘새로 태어난 여성’의 모습은 엘렌 식수가 쓴 2부의 내용이다. 3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저자의 대담이다.
저자들은 더 이상 ‘있지만 없는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여성들이 주체적 존재로서 스스로를 다시 규정하여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난날 남성들에 의해 규정된 여성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거짓된 모습’이었는지 짚어 본 다음, 새로 태어날 여성의 진실된 모습은 어떤 것일지, 그 진실은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 가늠해 본다.
‘1부 죄진 여성’은 주로 프로이트, 미슐레,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서구 남성 학자들이 쓴 저작물을 해체적으로 읽으면서 재해석하고, 그 과정에서 거짓된 모습이 어떻게 진리처럼 행세했는지 아이러니한 어법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들의 텍스트는 출처부터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 구전 설화나 전설과 신화에 기반한 것이었다. 판타지에 버금가는 내용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진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부장제의 권력에 의해 주입되고 작동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내면화되어 질서가 구축되면 아무리 거짓이라 해도 진실로 굳어지는 것이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다. 특히 프로이트는 여성 히스테리 환자를 연구하면서 중세의 마녀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중세의 종교재판관을 위한 마녀 식별 · 재판 · 처벌에 대한 가이드북이었던 '마녀의 망치'(1486)에 나오는 내용을 자신의 환자들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탄생'에서 이렇게 토로한다. “환자들이 정신치료를 받는 동안 말한 내용이 중세의 마녀 재판에서 고문으로 짜낸 억지 고백과 어떻게 그렇게나 닮은 것일까?”
이 말은 신경증을 치료받으러 온 환자의 상태가 마녀 재판에 끌려간 희생자와 그리 다르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마침내 그는 스스로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이론을 믿지 않는다.” 환자들은 결정적인 시점에서 소식을 끊고 사라져 버리곤 했다. 고문에 의한 억지 고백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면 자의로 끝까지 잘 지속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욕망을 내면에 가두어야 하고 눈물을 들이마셔야 하며 외침을 목구멍 깊숙이 삼키도록’ 강요당한 여성들은 전도된 형태로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등장하는 히스테리 환자의 발작은 마녀의 신들린 모습과 비슷했던 것이다.
카트린 클레망은 마녀와 히스테리 환자의 공통점을 여러 가지로 비교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히스테리 환자는 마녀의 딸이다.’ 과거의 여성들은 이런 방식이 아니면 터질 듯 과도한 긴장을 해소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런 식의 마녀나 히스테리 환자는 없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의 근원을 여성의 죄로 보는 시각은 아직도 상당히 남아 있다. 욕망을 가져서 죄, 갖지 않아도 죄, 냉정한 죄, 냉정하지 않아도 죄, 뜨거운 죄, 뜨겁지 않아도 죄, 지나친 모성애를 가진 죄, 충분한 모성애를 가지지 않은 죄, 자식을 둔 죄, 자식을 두지 못한 죄, 너무 많이 먹인 죄, 너무 적게 먹인 죄…이젠 여성을 모든 문제의 희생양으로 삼는 남성적 해석에서 탈피해야 하고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찾아야 한다.
‘2부 출구’는 새로 태어나기 위한 도구가 여성적 글쓰기임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남근중심주의가 규정한 위계적 이항대립 구조를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그 첫 번째가 능동성과 수동성이다. 수동적인 태도는 듣는 사람의 것이고 능동적인 태도는 말하는 사람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근중심주의는 말중심주의이기도 하다. 말은 가부장, 즉 권력자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이 주로 남성이었다면 듣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은 주로 여성이었다. 그것이 여성들의 몸조차 여성들의 것이 될 수 없었던 이유였다. 남성의 규정과 욕망에 맞춘 몸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여성해방은 남성에 의해 억압된 여성의 몸과 삶을 능동적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여성의 것을 여성이 규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여성들은 남성과 달리 단선적이지 않아서 간단하게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특성은 단순히 해부학적인 차이 때문이 아니라 성적인 쾌락을 향유하는 방식 때문에 달라진다. 남성의 성욕은 남근 중심의 해부학적 조건을 따르지만 여성은 신체 곳곳에 산재한 다양하고 광범위한 성감대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여성에게 남근이 없다는 것은 전통적인 사고방식처럼 결핍이 아니라 중심과 주변이 구별되지 않는 무한한 우주적 존재라는 의미가 된다. 거기에는 수많은 혀가 있고 제각기 다른 말을 한다. 그러므로 여성적 글쓰기는 여성 자신의 몸을 회복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의 본질이 단선적인 담론의 파괴를 통해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여성성의 회복을 통해 이항대립 구조의 권위를 깨뜨리는 거침없는 언어로 흘러넘쳐야 한다.
엘렌 식수에 의하면, 이런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기 위해서는 여성의 무의식이 드러나는 글쓰기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여성적 글쓰기는 현실 속에 분명히 구별되는 구체적 현상이 아니다. 무엇보다 여성성에 대한 논의도 아직 시작 단계이다. 게다가 한 개인의 제안으로 이제 겨우 몇십 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남근중심주의의 언어와 그 언어를 통한 인식의 역사는 적어도 2,000년 이상 지속되면서 굳어진 것이다. 그 거대한 구조에 변화가 생기려면 공개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엘렌 식수가 구체적인 예를 전혀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여성성의 회복은 남근중심주의처럼 한 성이 다른 성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지배적인 입장이 되려 하는 것은 ‘지배’라는 상황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2부의 마무리에서 거의 40쪽에 걸쳐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을 자세히 소개한다. 클라이스트의 '펜테질레아'와 셰익스피어의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플루타르코스의 '안토니우스'다.
그는 작품을 소개하기 전에 클라이스트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고 그에게 의지했으며, 한 여성, 한 남성이 아닌 복수(複數)의 삶을 위한 의지도 다질 수 있었다고 토로한다. 클라이스트는 19세기 초반의 독일 작가이고 작품의 내용은, 우리에게 '일리아스'를 통해 잘 알려진 아킬레우스와 아마존 여왕이자 여전사인 펜테실레이아의 사랑 이야기이다. 당연히 '일리아스'와 다른 스토리이다. 그런 사랑은 픽션만이 아니라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사랑 이야기이다. 20세기 프랑스 작가들 가운데에서는 콜레트, 마르그리트 뒤라스, 장 주네 정도의 작품에서만 잘 표현된 여성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3부에는 공저한 두 작가의 대담이 실려 있다. 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은 ‘여성이 지배적 위치를 점하면 여성성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식으로든 구체적인 결론을 얻기 어려운 문제이다. 2장은 ‘견딜 수 없는 여성’의 히스테리에 관한 것이다. 히스테리는 문화적 경계선을 넘는 저항이라는 점에서 두 작가 모두 인정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아주 다르다. 엘렌 식수는 혁명적인 역할이라고 평가하지만 클레망은 사회구조 변화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폄하한다. 대담의 내용을 보면 서로의 의견을 굳이 좁히거나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다양한 생각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여성성이라는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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